잘츠부르크에서(2)

동물원을 거닐다가...

by 정현


동물원이라는 곳을 안 가본 지 참 오래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은 것도 있지만 한동안 갇혀있는 동물들을 구경하러 가는 게 영 맘에 내키지 않았다.

큰딸 은서도 그런 마음이었다. 사랑하는 동물을 보고는 싶지만 그들이 구경거리가 되어 있는 모양을 보고 싶지 않아 했다.

잘츠부르크 숙소 근처에 동물원이 하나 있었다.

잘츠부르크 동물원(Zoo Salzburg Hellbrunn).

검색을 해보고는 이곳 동물원은 조금은 다르겠다 싶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동물원 입구에 들어서자 돌로 둘러싸인 산이 보였다. 그 작은 산을 중심으로 빙 둘러 동물원을 조성한 모양이었다.

산은 돌들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나무가 많았다. 걸어 들어 갈수록 동물원의 느낌보다는 식물원 같았다. 제일 처음 산양을 만났는데, 강아지처럼 우리를 반겨주는 산양들의 생각지도 못한 환대에 아이들은 잠시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지만 이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함께 놀기 시작했다. 아기 산양이 내 허벅지 높이까지 앞발을 뻗으며 일어났다.

간식으로 먹다 남겨둔 잣을 꺼냈다. 이걸 먹을까? 하다가 한 움큼 쥐어 자세를 낮추어 앉으니 산양들은 기다렸다는 듯 게눈 감추듯. 잣을 다 먹어버렸다.

내 간식을 동물 친구와 나눠먹던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콩닥거렸다. 살아 숨 쉬는 존재들과의 연결은 늘 가슴이 뛴다.

내 간식. 나눠먹자.

동물원을 걸었다기보다는 나무를 구경한 순간이 더 많았다. 키 큰 나무 아래에 바위엔 이끼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동물들을 보느라 혼이 빠져 있을 때 나는 이끼를 구경하느라 걸음을 멈춰서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엄마! 엄마! 하며 날 부르는 아이들. 곰을 봤다는 거였다. 덩치 큰 곰은 어슬렁거리며 산 허리를 가로질러 산책하고 있었다. “곰아! 곰아!”하며 외치는 아이들. 눈을 마주쳤다며 뛸 듯이 기뻐하는 아이들. 그런데 곰이 너무 멀리 있다고 했다. “원래 곰의 집은 동물원이 아니라 저런 산 속이잖아.”하고 내가 말했다. 시선을 돌리니 넓은 연못이 있는 들판에 노루와 거북이들, 새들이 함께 있었다. 연못가의 새들은 날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노루들은 느린 걸음으로 다니고 있었다. 넓은 초원 곳곳에 오래전 생을 마친 나무들이 누워있었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생과 사가 같은 공간에 머물며 ‘자연스러움이란 이런 거야.’하고 말하는 듯했다.


잘츠부르크 동물원은 한국에서 보던 동물원과 달랐다.

최대한 자연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나무가 쓰러지면 눕혀두고 동물들을 편 가르기 하지 않으며 나무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산의 둘레를 걷다 보면 어느새 호랑이도 표범도 원숭이도 보이는… 동물을 찾아 걷는 것이 아니라, 걷다 보니 만나지는 풍경들. 둘째 은유는 동물원에서 빌려주는 어린이용 트롤리를 탔다. 언니는 작은 손수레를 끌어주며 깔깔댔다. 다리가 아픈 나는 오래된 나무둥치로 만든 의자에 앉았다.

귀여운 손수레.
초록의 나무와 의자가 된 나무.


어디선가 닭 한 마리가 달려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닭을 뒤쫓았다. 같이 달리며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놀 때처럼 닭과 뛰며 잠시 어린이가 된 기분이었다.

원숭이들이 긴팔로 나무 사이사이를 옮겨 다니는 모습이 물가에 비쳤다. 그 물가엔 거북이들이 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는 정돈이 되어 있지 않았고 동물들은 자유롭게 놀았다. 아주 큰 울타리만 쳐놓고 동물들의 활동반경을 최대로 넓혀놓은 동물원.

닭과 나.


오랜만에 찾은 동물원은 내게 죄책감이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동물들의 움직임을 보며 잠시지만 동물의 맘이 되어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오전 내내 동물원에 머물며, 그들이 원하는 건 원래 살던 곳, 자연 상태의 집이 아닐까 싶었다.


잘츠부르크는 어딜 가도 생태 놀이터들이 있었다. 동물원 안도 마찬가지였다. 둘째 은유는 긴팔원숭이처럼 놀이터 나무 손잡이를 잡고 이곳저곳을 누비고, 모래 놀이터 위에서는 노루처럼 멀리뛰기를 하기도 했다.


아주 아주 오래전.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어놀던 그 시절이 있었다지. 서로가 서로를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함께 뒹굴며 사랑했던 그때.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우리는 인간중심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계속해볼 수 있을까? 잘츠부르크 동물원에서 모든 생명의 평화를 떠올린다. 누군가는 몽상가의 상상이라 할지 몰라도 나는 초록 대지에 모두가 함께 노니는 날을 간절히 원한다.

나무와 연못과 동물들. 어울림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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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