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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돌 기자 Dec 27. 2021

술 전문 기자가 본 술꾼도시여자들

※ 글 성격상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알쓰인데도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참 술이 땡긴다.

시즌2가 확정된 티빙 <술꾼도시여자들>, 나도 봤다. <술꾼도시여자들>은 '술'이 신념인 세명의 도시 여자가 술을 마시면서, 술로 인해서, 술을 위해서, 술과 함께 벌어지는 '기승전술' 일상 이야기다. 이들은 매일 오복집이라는 단골집에서 모여서 소주와 맥주를 까고, 폭탄주를 말아 마신다. "적시자!"가 이들의 구호.

드라마는 미깡 작가의 다음 웹툰 <술꾼 도시 처녀들>을 원작으로 한다. 인기가 워낙 많아서 티빙 유료가입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와카코와 술>이라는 여자가 술 마시는 드라마가 이미 나왔고, 그 당시에 우리도 <술꾼 도시 처녀들>을 드라마화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여자가 술 마시는 드라마

사실 '여자가 술 마시는 드라마'로는 늦은 스타트다. 여자들이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는 장면은 방송이나 드라마에서 많이 배척돼 왔던 것도 사실이다. 희한하게도 소주 광고에는 숱한 여성 연예인을 쓰면서 막상 대중매체에서 즐겁게 술 마시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긴 어려웠다. 그런 것보다는 이별을 통한 청승맞은 술, 말도 안 되는 술 주정, 그리고 그를 통한 새로운 남자주인공과의 만남... 또는 정말 싫어했던 상대와 솔직하게 이야기를 위해 포차, 또 술 주정, 술김에 눈 맞음, 다음날 일어나보니 같은 침대... 여성과 술의 조합은 그저 로맨스를 위한 뻔한 그림으로 쓰였다. 일본 드라마 <와카코와 술>도 비슷한 이유로 화제몰이를 했다. 일본에서는 여자 혼자 술 먹는 것을 불쌍하게, 혹은 사회생활에 적응 못한 여자처럼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정면승부해서 타파했다고 보는 견해들이 많다.

<술꾼도시여자들>도 그런 점에서 좋은 출발이다. 원작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나이가 35살인데, 사회의 쓴맛, 단맛은 충분히 본 30대 여성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 자체를 조명한 게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은 술도 거침없이 마시지만, 말빨에도 거침이 없다. 단골술집인 오복집에서 사장님이 남자 조심하라고 하는 말에 한지연(한선화)이 "이미 잤어요~" 라고 상큼하게 답한다거나, 술김에 안소희(이선빈)이 진상 개저씨에게 후련한 한 마디를 뱉는다거나, 누가봐도 어렵고 답답한 상황에서 호탕하게 나오는 강지구(정은지)의 모습까지. 누군가에 끌려 다녀서 마시는 술이 아닌, 이들이 삶을 겪으면서 마시는 진솔한 술 이야기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 성추행, 갑질, 가족과 갈등 등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겪는 어려움도 다양하게 묘사했다.


삶과 술, 술과 삶

특히 이 드라마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술로 빚어진 에피소드 뿐만 아니라,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 술을 핍진히 묘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에서 마시는 술, 퇴사할 때 마시는 술 등 다양한 일상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안소희(이선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마신 술에 대한 에피소드(9화)다. 안소희는 불현듯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맞이하는데, 이때 택시를 타고 급하게 내려가면서 느끼는 감정, 장례식에 도착했을 때 담담함과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슬픔 등이 정말 실제로 내가 장례식을 겪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됐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매력 포인트는 아무래도 함께 술을 마시는 세 친구의 우정인데 장례식에서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마시는 술은 남은 슬픔을 씻어 내리기에 충분했다.

나 역시 예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 풍경을 보면서 처음 느낀 감정은 '뜨악'이었다.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게 아니라 술잔을 주고 받으며 시끌벅적 오히려 즐거워 하는 듯한 모습, 겉으론 멀쩡해보이는 부모님, 그리고 발인되어서야 쏟아져 나오는 슬픔 등. 뭔가 현실 같으면서도 가장 현실 같지 않은 공간이 장례식장이듯. 이런 알 수 없는 감정을 풀어내기 가장 좋은 도구가 술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나 이외에도 다른 시청자들이 이 에피소드에서 많이 울고 웃지 않았을까 싶다.


연애와 술

사실 술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연애다. 이 드라마 역시 연애 에피소드에 대한 비중이 높다. 심지어는 동성애 소재까지도 가감 없이 다룬다. '있을 법한' 연애 이야기를 술로 풀어낸 점에서는 공감이 가고 좋았던 부분도 많았다. 요즘 드라마 답게 유쾌한 구석도 있었다. 4화의 인턴 소현(이수민)과 세 친구가 대작하는 모습은 유치했지만 볼거리가 많았다.

하지만 안소희(이선빈)가 술 먹고 한 실수, 한지연(한선화)와 남자들의 관계는 어딘가 뻔한 구석이 있어서 아쉬움도 남았던 게 사실이다. "쇠 냄새가 나서 좋아"라는 한지연이나 강지구와 친절한종이씨 결말은 너무나 드라마, 혹은 만화스러웠다(그래서 좋았던 부분도 있지만). 또 "왜 이렇게 쿨해?" 싶은 과한(?) 장면도 여럿 있었다. 연애 에피소드에서는 흥미 위주의, 겉핥기식 표현들이 유독 많았던 거 같다.

다음 시즌에서는 연애와 술에서 볼 수 있는 좀 더 찌질한 구석을 묘사해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술먹고 부재 중 전화, 차였을 때 재회를 바라는 심정 등 사실 연애와 술로 그려낼 수 있는 다양한 그림이 많기 때문에 조금 더 기대를 해보고 싶다.


술꾼도시여자들 시즌2를 기다리며

이 드라마를 보면서 느꼈던 건, 술을 묘사하는 방식이 새롭다는 거였다. 그동안 술은 '슬픔'의 동반자였지, 기쁨을 나누는 소재로는 다소 등한시 됐다. 그런데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술이란 소재를 풍부하게 사용해서 더 즐겁게 봤다.

색다른 여성 캐릭터들이 나온 것에 대한 반가움도 느꼈다. 어딘가에서 본 거 같은 성격의 여성 캐릭터들이 펼치는 좌충우돌 '알콜 모험'은 흥미로웠다. 30대는 사실 이미 성장할 만큼 성장한 나이다. 경제적으론 대부분 안정되어 있어서 누군가에게 더 이상 어리다고 우길 수 없지만, 여전히 속은 크지 못한 나이기도 하다. 이런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30대들이 시즌2에서는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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