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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돌 기자 Mar 02. 2022

잊지 못하는 술들

처음 마셨을 때 놀랐다

나에게 술 마시는 일은 굉장히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서, 웬만하면 술 마셨던 순간을 다 기억하지만 그중에서도 잊지 못하는 술들이 있다. 오늘은 그 잊지 못하는 술을 만난 순간들을 회상해볼까 한다.


1. 레몬 소주

중학교 때 처음 소주를 마신 이후, 처음으로 마신 술은 대학 선배들과 마신 레몬 소주였다. 학교 근처 전통주점에선 레몬 소주를 팔았는데, 이 레몬 소주는 메뉴판에도 없는 '특급술'이었다. 그럼 어떻게 마실 수 있느냐, 이미 와본 선배를 따라서 똑같이 주문하면 된다. 그럼 기존 소주병에 레몬이 잔뜩 갈려져 담겨진 레몬 소주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레몬 소주는 정말 너무 맛있었다. 선배들은 늘 올 때마다 "이 레몬 소주 다 남은 소주로 만드는 거야"라고 푸념하면서도 시켰고, 내가 나중에 후배들을 데려올 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사실 확인은 전혀 되지 않았다.


2. 봄베이 사파이어

내 인생의 첫 양주. 당시 바에서 바텐더로 아르바이트하던 친구가 품 안에서 의기양양하게 꺼냈던 술이다. 나는 무슨 세척액인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알고 보니 술이어서 더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파란 음료는 파워에이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봄베이 사파이어를 탄산수에 타줬는데 처음 먹는 양주맛에 정말 소름이 끼쳤다. 너무 맛있어서. 그뒤로 "나도 꼭 혼자 봄베이 사파이어를 사먹을 거야" 결심했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3. 코로나 맥주

예전엔 코로나 하면 다 맥주로 알아들었는데, 코로나19 이후로 코로나 하면 자꾸 질병 관련 사진이 떠서 '코로나 맥주'라고 불러야 한다. 코로나 맥주는 아버지가 알려준 술이다. 우리 가족은 음악 축제를 가는 걸 좋아했는데, 알겠지만 뮤직 페스티벌은 보통 입장권 밴드를 팔목에 하고 스탠딩이나 잔디밭에 앉아서 보는 게 국룰이다. 거기에 레몬을 넣은 코로나 맥주까지 ! 그때 잔디밭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코로나 맥주 마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코로나 맥주를 들고 뮤직 페스티벌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싶다.


4. 이화백주

최초로 마신 프리미엄 막걸리. 술 전문 기자가 되기 전에 강남의 한 술집에서 선배가 술을 사준다고 데려갔는데, 너무 독특한 막걸리들이 많아서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그중에 선배가 픽한 술은 바로 이 이화백주. 양산에서 만드는 프리미엄 탄산 막걸리다. 한병에 12000원인데, 술집에서 마셨으니 더 비쌌을 거다. 속으로 '막걸리가 왜 이렇게 비싸'라고 생각했다. 선배 찬스로 한병을 주문해 마셨는데 샴페인잔이 나와서 헉 했다. 그 전까지 내게 막걸리는 양은그릇에 따라서 먹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화백주를 세병인가 시켜서 먹었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전통주를 좋아하게 될 지 몰랐지.


5. 롱아일랜드티

롱아일랜드티는 칵테일이다. 바에선 보통 롱티라고 한다. 이 레시피를 만든 바텐더가 일하던 바가 롱아일랜드에 있어서 롱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재료는 국제바텐더협회(?) 기준 진, 보드카, 럼, 데킬라, 코앵트로, 레몬주스, 시럽, 콜라라는데 의외로 티는 안 들어감. 바마다 레시피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도수는 20~30도. 내가 이걸 마시게 된 이유는 친구 때문이다. 당시 롱티에 완전 꽂혀서 롱티 말고는 술은 안 먹겠다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 나는 친구가 하도 롱티롱티 노랠 부르길래 이태원에 가서 롱티를 마셔봤고 알콜맛이 거의 안나서 1차로 깜짝, 뒤늦게 올라와서 2차로 깜짝했던 술이다. 실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다. 말도 안되는 술주정은 덤.


6. 아구아밤

나랑 친한 친구 중에서 SH라고. 그때 당시 그 친구가 써스데이 파티라는 바에서 일을 했는데, 거기서 처음 마셔본 술. 나는 아구아밤을 마시고 "이거 정말 혁신적인 폭탄주"라고 생각했다. 술의 무게를 이용해서 모래시계처럼 쌓아놓은 것도 신기한데, 이걸 한 번에 털어넣는 것도 너무 멋지다. 괜히 기억하는 건 아니고, 이날 친구 얼굴을 봐서 사장님이 아구아밤 한병을 서비스로 돌렸기 때문이다. 아구아밤에 만취한 상태로 했던 비어퐁이 너무 즐겁고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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