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쓰의 결정권에 대하여
양조업계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보통 '찐' 술꾼들은 드라이한 술을 선호하지만, 술을 잘 팔고 싶으면 오히려 단술을 만들라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 하지만, 한 양조장 대표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술자리의 주종 결정권은 알쓰에게 있다는 것.
술꾼 모임이 아니라면 대부분 모임은 알쓰+술꾼 구성으로 이뤄진다. 이때 주종 결정권은 가장 주량이 약한 사람, 즉 알쓰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병째' 시키는 술들이 그렇다. 와인바, 프리미엄 막걸리를 파는 전통주점 등등. 알쓰가 먹을 수 있는 도수의, 알쓰가 좋아할 법한 단술로 시킨다. 전통주점에서 이화백주나 복순도가 막걸리가 인기 있는 이유도 술맛이 좋아서도 있겠지만, 알쓰나 술꾼이나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술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양도 많고).
와인바, 전통주점이 아니라 양주를 파는 펍에 가도, 보드카를 시키면 보통 탄산수나 크랜베리주스가 더 잘 팔린다. 샷으로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달달하고 천천히, 기분 좋게 취하는 것. 술에도 그래프가 있다면 능선으로 천~천히 취하는 느낌. 소주업계에서 인기가 좋았던 청포도 소주, 자두 소주, 레몬 소주, 그리고 최근 나온 빠삐꼬 소주까지. 안그래도 도수를 낮춰놓고 단맛까지 입히는 이유가 괜한 것은 아닐 테다.
내가 취재한 한 양조장 대표님은 "전통주점 가서 다들 드라이한 술 좋아한다고 해서 드라이한 술 시켰더니, 결국 두병 시킨 건 단술이더라"는 말도 남겼다.
나 또한 한창 와인바를 혼자 다닐 때 드라이한 와인을 좋아한다고 입을 털다가, 로제 와인이라는 것을 처음 먹었을 때 머리 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줄 알았다. 아, 그랬다. 나 역시 단술을 좋아하는 알쓰였던 것이다.
모든 술꾼이 드라이한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만나본 상당수의 술꾼들은 드라이한 술을 좋아했다. "술이 달면 음료수"라는 말도 흔하고, "술이 술다워야지"라는 말도 한다. 양조장 중에서도 단술이 싫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이한 술을 만들었다는 대표들이 많다(팁이 있다면 보통 협동조합 형태의 양조장에서 드라이한 술을 팔 가능성이 높다. 조합원들이 술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 술 기사를 썼을 때도 '드라이한 술'을 소개하면, 사먹어봤다는 사람들의 연락이 온다. 늘 드라이한 술은 탄탄한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다. 매니아들이 있기에 아무리 술이 달아지더라도 드라이한 술은 절대 멸종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