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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돌 기자 Dec 17. 2021

주량이 안 맞는 커플

다른 건 잘 맞는데 주량이 안 맞는다면

여기는 서울 강남구의 한 소개팅 자리.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 분위기도 좋고 말도 잘 통한다. 애프터도 어렵지 않을 듯 싶은데 여자 A씨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남자 B씨에게 한다.

"그런데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사귀는 사이에 주량은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얼마 전에 소개팅을 해줬다. 정말 괜찮은 두 사람의 만남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소개팅을 받기 전에 내게 물은 게 있다. "네가 해주는 소개팅이라 사람 좋고 성격 좋은 거 알겠는데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오, 뭔데?" "그분 주량이 어떻게 돼?"

주량은 연인끼리 중요한 문제다. 진정한 주당과 알쓰(알콜쓰레기, 술을 못 마시는 사람)는 연애하기 어렵다. 주당의 삶을 알쓰가 이해하질 못하고, 알쓰의 삶을 주당이 이해하질 못하기 때문에. 다행히 주당 친구에게 주당 친구를 소개해줄 수 있어서 소개팅은 성사가 됐지만, 만약 나같은 알쓰였다면 소개팅은 무산됐을 것이다.

많은 주당들이 연인과 술집에 가서 술 마시는 것을 로망으로 꼽는다.  내가 아는 분도 집에 홈바를 차려놓은 분이 있다. 그분은 남편과 함께 매일 홈술 하는 게 취미다. 주종은 맞추지 않는단다. 각자 좋아하는 술을 꺼내어두고 어울리는 안주에다가 "짠!"만 같이 한다고. 그게 퇴근 이후 행복이라고 자랑처럼 말했는데, 진심으로 부러웠다. 술과 주량이라는 불변의 공통사가 맞는 커플이라니.

반대로 주량이 맞지 않는 커플은 아무리 사이가 좋더라도 술 때문에 싸우는 일이 생긴다. 알쓰는 다른 일로 밤을 지새우지, 대부분 새벽까지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새벽까지 술 자리를 가지는 편이다. 옆에서 지켜보면 "오늘은 두시까지만 마셔야지!" 이런 식으로 결심하고 마시는 주당들은 많이 없다. 1차 끝나고, 2차를 가고, 2차가 분위기 좋으면 술 자리가 길어지고, 길어지다보면 3차도 가고. 맘이 맞다보면 날이 새고 해장국까지 뚝딱하기도 한다. 그런 문화를 알쓰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나마 주당인 사람이 알쓰인 연인을 배려한다면 술 자리에서 연락을 꼬박꼬박 잘 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 또한 말처럼 쉽지는 않다. 술 자리가 무르익다보면 연인의 연락은 뒷전으로 가기 마련.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냥 휴대전화만 손에 잡고 있기도 참 난처하다. 차라리 그러면 다행이지, 일부는 술에 취하면 블랙아웃이 되거나 잠이 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 알쓰인 연인들은 눈이 빨개지도록 밤을 지새운다. 이놈의 술꾼을 대체 어떡하나 하고. 결국에는 헤어져야 하나 고민도 든다.

여러 고민 글에 '술 자리가 많은 남자친구 어떡하나요' '여자친구가 술 자리에서 연락이 안돼요' '남자 술자리 연락 문제' 등이 키워드인 것도 술자리 문제가 얼만큼 연인들에게 중요한 문제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주량이 안 맞는다는 것은, 단순히 술을 마실 수 있는 용량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지내온 삶과 문화의 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뻔한 소리지만, 그래도 늘 협상의 여지는 있다. 어쩔 땐 알쓰가 용기내서 술 자리를 먼저 청하고, 주당도 알쓰 연인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배려와 신경을 써줘야 한다. 물론 인생에서 술 자리가 가장 중요하다면 그게 딱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방법. 서로서로 술을 안 마시는 사람들이라면 술 자리 문제로 고민할 일도 없고, 반대로 주당이라면 아마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참 쉽지 않다. 수많은 커플들을 보면 주당과 주당이 반하는 일보다 알쓰가 주당에게, 주당이 알쓰에게 반하는 일이 많다.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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