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딜레마
내 주량은 소주 세잔, 최대 주량은 소맥 네잔이다.
'자기가 말한 주량X2'가 되는 기적의 술자리 주량 계산법은 사실 주량과 자기가 한계까지 마실 수 있는 술이 다르기 때문에 나온 거 같다. 그렇다면 주량이란 무엇일까. 대체 어디까지를 주량이라고 해야할까.
글을 쓰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주량에 대해서 물어봤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주량은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정도'가 주량이다. 나는 소주 세잔까지는 기분 좋게 마실 수 있고,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술이 맛없고, 부담스럽고, 의무적으로 마셔야 되는 것으로 바뀐다. 또 세잔부터 컨디션이 안 좋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두드러기가 나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밖에 재밌는 주변인들의 대답 몇 가지를 추려봤다.
한 맥주 공방 사장님은 자신의 주량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밤 12시까지 마시고 자고 일어났을 때 다음날 개운한 정도가 주량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숙취가 있거나, 다음날 술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면 그건 자신의 주량을 넘은 것이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평균적으로 N병 마셨을 때 안 힘들구나를 스스로 느끼는 게' 주량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주량은 1.5병. 소숫점 단위로 주량을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술을 많이 마셔봐서 자신의 주량을 잘 안다.
술을 과하게 마시면 '안하던 짓'을 하게 된다. '취중진담'이라는 노래가 괜히 있는 게 아니듯 술김에 고백을 한다거나, 술김에 남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다든가. 평소 용기가 없어서 못했던 행동을 한다든가. 한 친구에 따르면, 주량이란 술김에 안하던 짓을 하기 직전까지 순간이 주량이다. 뭔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건 주량을 넘겼기 때문이다. '적정 주량'이라는 단어가 설명되는 답이다.
흔히 '밑잔'이라는 말이 있다. 밑잔은 술을 잔에 남긴 상태다. 밑잔을 싫어하는 술꾼들이 많다. "그거 까지 마시고 받아"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테다. 한 지인은 술은 꺾어 마시는 순간 이미 주량을 넘어선 것이라고 말한다. 한번에 털어넣어야 하는데 꺾어마셨다는 건 술에 대한 의지도 꺾였다는 거다. 알쓰 입장에선 이상한 답변이지만, 일리있다.
주량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한 지인은 머리는 멀쩡한데 몸이 휘청거리면 이미 주량을 넘었다고 말한다. 또는 필름이 끊기기 직전을 주량으로 보기도 한다. '기억이 있는 시점'까지가 주량이라는 것이다. 주량까지 마시면 목구멍에 밀어 넣으려고 해도 안 들어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는 네 발로 기어가지만 않으면 주량을 안 넘은 것이라고 말한다.
술이 잘 받는 날은 소주가 물처럼 느껴진다. 달기까지 하다. 그런데 물도 소주처럼 느껴진다면? 한 지인은 물에서 술맛이 나서 살짝 역해질 쯤에는 그만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물도, 술도 구분이 안 될 정도라면 정말 많이 마신 거다.
호기로운 답변도 있다. 주량이란 상대가 마신 정도에서 1잔을 더 마시는 게 주량이라는 것. 결국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주량도 달라진다는 답이다. 함께 마시기 싫은 사람과 술을 마시면 그날 주량은 반병, 함께 마시면 행복한 사람과 마시면 그날 주량은 무한대. 어떤 술을 마시냐보다 어떤 사람과 마시는가도 술을 마실 땐 중요한 요소다.
이밖에 주량은 매일 달라지는 것이라든지, 주량은 /h로 해서 1시간에 마실 수 있는 술을 측정해야 한다든지, 눈앞의 이성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시점이라든지의 답변들이 있었다. 주량이 각자 다르듯, 주량을 생각하는 각자의 생각도 다르다. 뻔한 이야기지만 술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량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