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었던 곳, 이 세상이 아니었던 그 곳. 그 곳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나는 그 곳에서 있었던 기억을 잊기 시작합니다. 비로소 말이 완전해지면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요. 나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검은 잉크를 한바닥 쏟아 놓으면 그렇게 검을 수 있으려나요. 태어나서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한 맹인의 눈 밑이 그렇게 적막할 수 있으려나요. 검고 막막한 영원 속 우리는 그저 먼지처럼 부유하며 떠다닙니다. 우리의 부유는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우리는 존재가 되지 못하여 어떤 의미도 없지요. 그러다 알지 못하는 어떤 놀라운 힘에 의해 번쩍하는 빛과 함께 세상으로 끌려갑니다. 나는 씨앗이 됩니다. 나에게 뇌와 귀가 생기는 그때부터 일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씁니다. 찰방찰방 물 흐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당신의 자궁 속. 귀를 바짝 대고 당신의 모든 것을 느끼려 애쓰지요. 당신이 나를 궁금해 하는 것처럼,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미치도록 세상이 궁금하고 당신이 궁금합니다.
씨앗이 된 후 자리를 잡은 곳은 당신의 배 속이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짧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고 나에게는 세상에 내게 내려준 단 하나의 요람 같은 곳이었습니다. 나는 이곳이 아니면 못 왔을 것이고 당신이 불러주지 않았다면 씨앗조차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다른 이의 배에 갈 수 있기를 바랄지도 모른다고요? 아니요! 나는 추호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안 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와 당신은 그저 필연입니다. 당신이 곧 나입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고 당신이 불러 주었기에 내가 당신의 자궁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자궁은 내가 있어야할 존재의 근원이고 내게는 단 하나뿐인 나의 자리입니다.
나는 당신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줄곧 기대합니다. 그러나 씨앗에서 처음 내 몸을 부풀리던 그 시기, 안타깝게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축복받지 못한 생명이라는 것을 직감했지요. 당신은 자주 한숨 쉬었고 불안해했고 종종 걸음을 했습니다. 내게 이름도 붙여주지 않았어요. 좀 더 안정을 취해야 할 시기에도 당신은 쉼 없이 일을 해야 했고 나는 아주 불안하게 당신의 자궁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독한 약품 냄새. 그 냄새가 역해서 자주 몸을 뒤틀었고 당신은 힘에 겨워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생겼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ㅡ 매 주 월, 목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