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도 덜컥 만나지는 마음
자동차 엔진을 갈아야 한다.
차를 맞기면 믿을수 있는 기동력은 오로지 이 튼튼한 두다리이다.
이미 러너의 심장이 뛰고 있으니, 가볍고 느리게 산책하며 봄기운을 만끽하는 것을 잊은지 오래다.
사실 걷는게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그렇다고 365일 계속 뛸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얼마나 또 그렇게 달렸다고.
사람 참 간사하다.
"모든 진정한 생각은 걷는 동안에 이루어진다."
- All truly great thoughts are conceived while walking.
-프리드리히 니체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 부터 나온다.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걷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거의 매일 몇 시간씩 산책하며 사유했고, 걷기와 생각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달리기를 할때도 초반에는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하지만, 숨이 차오르고 쉬지않고 뛰기때문에 생각이란걸 할수 있는 여유가 없다.
고로 달리기는 초반에 뒤죽박죽 얽혀있는 생각들을 심장박동이 올라가면서 단번에 결정을 지을수 있는 장점이자 단점이있다. 빠른결정도 좋지만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하기도 했다.(개인적으로)
심장이 뛰는 속도만큼 결정도 조금 빨라지는 듯하다.
빠른결심과 결정이 필요하다면 달리기를 추천해본다.
오늘은 다분히 의도적인 무해한 일탈이다.
차가 없으니 걸어서 왕복 12km에 위치한 거래처 서점에 다녀오기다.
대신 걸으면서 동네구경도 하고 메모도 하고 풀리지 않은 몇가지 생각도 해보기로 한다.
차를 맞기고 걷기시작하는 지점에서 저 멀리 할아버지 한분이 자전거 폐달을 서서 밟고 오신다.
점점 가까워져 보니 뒷자리에 백발의 할머니가 할아버지허리를 꼭 잡고 계신다.
있는 힘껏 지금까지 살아오신만큼, 힘겨워도 멈추지 않는 인생처럼 멈추지 않는 바퀴가 점점 확대되어 보인다. 할아버지 끝까지 화이팅입니다!!
( 마라톤할때 배번호를 보고 이름을 불러주시며 화이팅하시던 어르신이 생각났다. )
“사랑이란, 상대방의 약함을 알아보는 감수성이다.”
-알렝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사랑이란 약한 자를 안고 가는 일, 가만히 기대주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좋아했던 알렝드 보통의 글이 생각났다.
비단 힘의 약함뿐만아니라 마음의 나약함, 순간의 흔들림, 말 못할 슬픔까지도 알아채는 감수성이 사랑이 아닐까.
자전거 뒤에 앉아 할아버지의 허리를 가만히 감싸고 있던 할머니의 손길은
‘나 여기 있어요, 당신 혼자 아니에요’라는 말 없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앞서 가는 이의 등을 밀어주는 일인 동시에,
기댈 수 있도록 등을 내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얼만큼 지났을까 골목길로 들어서니 재밌는 간판들과, 상점들에 붙어있는 신기한 것들을 보느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한참을 걸었다.
그중 꽤나 오래되 보이는 간판 [미나 의상실]
미나라는 이름은 누군가에겐 추억과 그리움, 혹은 첫사랑 같은 감정을 불러오기도 한다.
중학교때 친구중에 미나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인형이름도 미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미나(Mina)가 붉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응원하는 모습으로 큰 화제를 모으며 전국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잃어가면서 살아가는 거야."
"죽는 건 끔찍한 일이 아니야. 진짜 끔찍한 건 살아 있는 거지. 나처럼."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이 구절은 등장인물 '나오코'의 고통과 상실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사이다.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상실과 내면의 혼란 속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상실감.
잃는 다는것.
사람은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고,
그 빈자리를 껴안으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와 멀어지고, 사랑이 떠나가고, 어떤 감정은 흐릿해지고, 어떤 마음 한 조각은 두고 오기도 한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예전의 나와는 다르게 변해갔으니 예전의 나는 잃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실 속에서도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살아간다.
어쩌면 잃는다는 건, 그만큼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고 간직했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잃은 것의 자리에 남겨진 감정은, 언젠가 다시 무언가를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는지도 모르겠다.
잡을 수 없는 것을 계속 붙잡고 있는 마음의 습관
이제는 떠났다는 걸 알지만, 아직도 문득 그 상황 그 문제들을 안고있는 마음.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는 그리움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 하지만,
상실은 그 시간을 천천히 더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
함께 웃던 순간들이 사라지고,
나만 멈춰 선 듯한 고요함 속에 갇히는 느낌.
무력감과 죄책감
내가 조금 더 잘했더라면, 그때 그렇게 하지 말걸,
내가 붙잡았더라면… 끝없는 “만약에” 속에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상실감이 주는 고통은 사실 꽤나 오래간다.
누구나 상실의 고통을 알고 힘들어한다.
이 나이쯤 되면 산전수전 공중전은 그러려니하는 지경까지 왔다.
이런 고통은 없앨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기에 상실을 겪었다고 해도 잘 살아갈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덜 힘들게 살아가자.
미나 의상실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길위에서도 덜컥 만나지는 나의 상실감들이 떠오른다. 갈길이 멀다.
그런 상실감을 뒤로한채 걸어본다.
윤상의 FM데이트에서 마침 효율적인 걷기 방법을 알려준다.
보폭을 최대한 크게 넓히고 걸어보는것이다.
멘트가 끝나자마자 발보폭을 최대한 넓혀본다.
( 나는 참 말을 잘 안듣는데, 윤상오빠 말은 듣고싶다..)
물회를 8천원에 컵물회로 테이크아웃할수 있게하는 곳도 있고, 북방산 개구리를 판매하는 곳, 청소물건파는 업체에서 금이빨을 최고가로 매입하고, 미용실에서 산마늘을 판매하기도 하는 조금은 신기한 동네걷기 체험이었다.
사람냄새나는 걷기였다고 말하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는 입소문으로 만 들었던 위치를 알수없었던 작은 레스토랑도 발견했고, 내일 점심은 여기다!
갈때는 몰랐지만 돌아올때는 지름길도 찾아내어 일찍 도착할수 있었던 나의 무해한 일탈 안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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