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창 너머의 이야기
사람을 관찰한다는 것은 어쩌면 거울을 보는 일과 비슷하다.
지금도 가끔 카페에 앉지만, 대학생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더 오래 머물렀던 것 같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보다는, 아래층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젊은이들의 옷차림, 가방에 매단 작은 악세서리, 유행하는 신발과 헤어스타일.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어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철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대학생들보다 훨씬 한가롭고 여유롭게 살았던 것 같다.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청정했던 구간이다.
짧았지만,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은 시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자취방으로 친구들을 데려와
보고 싶었던 비디오를 함께 보고, 새우깡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과일 소주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다음날 머리가 쪼개질 듯한 숙취를 견디면서도 다시 마시곤 했다.
나는 사람 뒷통수만 봐도 누군지 알만한 관찰력을 갖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어릴때부터 사람들을 참 많이 관찰해했다.
친구들의 표정 몸짓 심지어 눈동자까지도 깊게 관찰했다.
지금도 사람들의 작은변화도 잘 알아차려 아무도 모르는데 알아차린다고 고마움 반, 놀라움 반의 말을 듣기도 한다. 지금도 사람들을 끊임없이 버릇처럼 관찰해온다.
나는 지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의 무해한 일탈안내서는 카페 아래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해보기이다.
날씨가 이젠 제법 덥다.
바닷가라 바람도 시원하다 .
나도 오늘은 반바지를 입고 나왔을 만큼 여름이 코앞에 왔다는걸 느낀다.
연인한쌍이 저만치에서 걸어오는데 여성분은 짧은 반바지에 긴 후디를 입고 남성분은 체크셔츠에 카고바지를 입었다. 전형적인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젊은이들이다.
일단 부럽다. 젊음이!
아무이유없이 젊음은 반짝인다.
짧은 반바지와 긴 후디, 체크 셔츠와 카고 바지.
저 자유로움의 조합은 한 가지 확실한 계획만큼은 품고 있는듯 하다.
오늘은 무조건, 많이 걷겠다가 아닐까?
많이 걷기를 추천한다 젊은이들이여!
생각보다 사람들은 블랙을 많이 입는다.
햇살은 뜨겁지만, 사람들의 옷차림은 여전히 겨울의 그림자를 조금 끌고 온 듯하다.
이번에 지나가는 연인도 그렇다.
두 사람 모두 블랙 코디에, 그 사이를 종종거리며 걷는 건 하얀색 강아지 한 마리다.
검정과 흰색.
이 두 색은 서로를 끌어당기듯, 서로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강아지와 커플의 완벽한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조합 블랙앤 화이트!
남성분이 강아지 목줄을 자기 목에 걸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평등해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이끈다기보다, 함께 걸어가는 것 같은 순간이다.
이번에는 커피거리를 런웨이로 바꿔놓은 세 명의 외국 여성들이 지나간다.
한국 사람들에게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특유의 아우라를 풍긴다.
나는 키가 작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평균 이상 키를 가지셨지만, 나는 유독 작다.
이 작은 키를 큰 컴플렉스라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다.
다만 어릴 때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던 사람들이 내릴 때, 그 팔꿈치에 머리를 종종 얻어맞았던 기억만 빼면.
그래서 오늘, 장신의 멋진 여성들이 힘차게 걷는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껴본다.
부러우면 지는것. 졌다.
허리가 꼿꼿한 할머니와 허리가 굽으신 할머니 두분이서 천천히 걸어가신다.
어떤 사이일까?
두 분은 마치 오래된 친구 같기도 하고, 먼 길을 함께 걸어온 인생의 동반자 같기도 했다.
꼿꼿한 허리는 세월을 버텨낸 자부심처럼 빛났고, 굽은 허리는 세월을 껴안은 따뜻한 굴곡 같았다.
지금은 젊다는것을 당연히 생각한다면 나이들어가는것또한 비켜갈수 없는 운명이다.
나도 언젠가는 할머니가 되어있겠지.
세월의 모양을 따라 구부러지거나 꼿꼿해질지 모르지만, 그때에도 누군가와 나란히 천천히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천천히 누군가와 함께라면.
잠시 멈춰 서서 나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 바람, 그리고 시간.
모두가 각자의 방향과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
나 역시, 내 걸음을 이어간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삶의 여러 단면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젊음의 자유로움, 나이의 무게, 그리고 함께하는 소중한 순간들.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걸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앞으로도 누군가와 함께 천천히 걸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계속 이어가는게 잘 살아가는 일일겠지.
모두가 자신의 방향, 그리고 각자의 속도로.
나 역시, 내 걸음을 이어간다.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