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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은 뜨겁고 소주는 차갑게]

-식당에서 첫 혼밥과 혼술

by 무지개바다

카페에는 혼자 잘 가면서 마흔이 훌쩍 넘은 이 나이가 되도록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게

새삼 놀라운 일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첫 경험"이라고 생각하니 꽤나 특별한 경험이기는 하지만, 식당에 혼자 가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글까지 쓸 일일까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하지만 꽤나 별거 없어 보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


이전 연재했던 노자의 도덕경에 빗대어 보면


어려운 일을 하려는 자는

그 쉬운 일부터 하고,

큰 일을 하려는 자는

그 작은 일부터 한다.


세상에 어려운 일은

반드시 어려운 일에서부터 시작되고,

세상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노자 -


혼밥, 혼술에 노자까지 데려오는 건 오버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꽤나 거창한 일이다.

혼밥은 '혼자 밥을 먹다'라는 의미로, 개인이 혼자서 식사하는 행위다.

이 단어는 2010년대 중반부터 사용되기 시작됐다.

혼밥이라는 신조어가 한참 떠들썩할 때도 나는 혼밥을 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기에

그저 내 얘기는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 해도 포장을 해와서 집에서 먹거나 먹지 않거나 이 두 가지를 선택했던 나였다. 그저 혼자 식당에서 밥을 시켜 다 먹을 자신이 없었기도 했다.

그 이유는 남의 시선일까?

아니면 낯선 환경에서 그것도 오롯이혼자 무엇을 먹는다는 게 부담스러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문화에선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자 함께하는 식사자리는 친교 도모의 목적도 가지고 있어서 남들 가운데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익숙한 모습은 아니었다.

눈치가 보이고 남들 시선도 견뎌야 하는 그런 독특한 행위로 여겨지기도 했었다.

한때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혼밥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이지 않은가?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식사하는 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었고, 더 나아가 혼밥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자아 중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기도 하며,

혼자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식사 경험이 되기도 하니까.

일부러 혼자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나의 세 번째 무해한 일탈 안내서는 국밥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귀가하는 것이다.

혼밥은 단순히 혼자 밥을 먹는다는 뜻이지만
그 안에는 ‘혼자 있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 담겨 있는 것이라는 감정을 넣어 국밥과 소주를 먹고 마셔보는 일을 꾸며본다.

별일을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니 혼밥을 하기로 결정하고 시간을 잡고 장소를 정하고 나니

소풍 가기 전날처럼 두근거리고 신나는 건 철이 없는 일인가??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만
정상적이고, 외롭지 않고,
그래야 하는 걸로 배워온 것 같다.


퇴근이 비교적 빠른 날을 선택해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강릉에서는 꽤나 이름 있는 순대국밥집을 선택했다.

이곳은 사장님 부부가 하시다가 아들에게 전수해 주신 순대국밥집이다.

친구가 강릉에 왔을 때 이 집을 데려간 적이 있는데 자기가 먹은 순대국밥집중 탑 3에 든다며 엄지를 여러 번 치켜세워준 집이다.

(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집에 주차를 하고 출근복장을 아주 편안한 옷으로 환복을 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나선다.

무엇이든 복장이 편안해야 일이 잘 풀린다.

나는 오늘 온몸으로 혼밥과 혼술에 진심이다.

요즘은 밤공기도 그다지 춥지 않고 상쾌한 것이 소주가 달콤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신가요?"

당당하게

"혼자예요. 순대국밥에 순대만 그리고 소주도 하나 주세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주문부터 씩씩하게 해야 국밥과 소주를 화끈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을 가져다주시는 종업원분이 밝게 웃으시면서

"네 소주먼저 드릴까요???"


너무 좋은데!! (센스 있는 종업원에겐 팁을 줘야 한다.)

간단한 반찬과 소주가 테이블에 놓였다.

이 집은 부추무침이 꽤나 매력적이다.

김치와 깍두기도 맛있어서 국밥이 나오기 전에 한잔 마셔본다.


"캬!!!!!!"



아니 이 좋은 걸 왜 한 번도 해보질 못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도파민이 막 샘솟기 시작했다.

(술이 좋은 건가?)

그게 무엇이든 혼자 밑반찬에 소주를 마시는 개인적인 일이 이렇게 뿌듯하게 느껴지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말인가???




9살부터 11살까지 2년 정도 거의 매일 치과치료를 받으러 다녔었다.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할아버지가 늘 기다리셨다가 치과를 데려가셨는데,

치과를 굉장히 무서워했던 나는 할아버지를 보면 눈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했었다.

진료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날은 짜장면을 사주시거나 내가 먹고 싶은 게 없을 때는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막국수집에 가서 막국수하나를 시켜서 빈 그릇에 조금 덜어주시곤 하셨다.

혼자 국밥을 먹는데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나는 건 할아버지가 생각나서라기 보다 술을 못 드시던 할아버지께서 한 번은 소주를 시키셔서 딱 한잔을 마시던 게 생각났다.

그때 우리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드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그것도 딱 한잔 마셨던 걸까?

시켜놓은 국밥옆에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막국수가 겹쳐 보인다.


혼밥에 국밥은 최고가 아닐 수가 없다.

애주가 거나 술을 마실줄 아는 사람은 국밥에 소주 마시는 기분을 충분히 아시리라.

국밥에 순대를 건저 내 새우젓갈에 부추까지 싸서 소주 한잔을 곁들이면 그 순간은 그냥 다 잊을 수 있다.


그렇게 오늘, 나는 처음으로 혼자 밥을 먹었다.
오늘의 이 한 끼는 내게 오래도록 기억될 ‘첫 번째 용기’다.
이 작은 시작이 언젠가 또 다른 나의 일상을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 그때의 할아버지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딱 한 잔의 소주로 마음을 건넬 수 있기를.

그리고 소주로 무엇인가는 훌훌 털어버릴 수 있기를..

국밥은 뜨겁고 소주는 차가웠다ㆍ




글을 마치려는 순간

북클럽 단톡에 파전에 막걸리가 당기는 날씨라는 톡이 뜬다ㆍ

다음번엔 너다!!

혼자 마시는 막걸리와 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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