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택시기사가 남연 씨의 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네요."
상담사는 그 한 마디 말로, 병원 밖으로 서둘러 도망치기를 원했던 ‘나’의 부분을 제자리에 멈춰서게 만들었다. ‘너는 다쳤다’고, 진실을 말하는 택시기사의 목소리로부터 내가 또 다시 달아나지 않도록 붙잡아 주었던 것이다.
현재보다는 이미 지나간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나에게는 좀 더 수월한 작업이라고 판단했던 걸까. 아니면 도망친 자리에서 자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는 본능의 발현이었을까. 어쨌거나 이날을 기점으로 나는 다시 필사가 아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에 대해서.
가장 먼저 적었던 글은 유년 시절에 경험했던 폭력에 관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처음으로 유치원에 갔던 날, 나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시점이었다. 처음 만난 교사의 손에 이끌려 쭈뼛쭈뼛 낯선 공간에 발을 들였을 때,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한창 커다란 원형 탁자에 모여 앉아서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에게 배정된 자리 앞에도 스케치 도구가 놓여 있었다.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긴 했으나 너무 긴장한 탓에 교사의 설명을 두 번이나 듣고 나서도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짧고도 긴 망설임 끝에 내가 한 선택은 바로 옆자리에 앉은 아이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놓고 따라 그리다가, 교사로부터 그러면 안 된다는 경고를 받고 나서는 몰래 흘긋거렸다. 옆에서 경계하는 시선이 또렷이 느껴졌지만 도저히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교사의 표정이 빨리 여백을 채우라고 독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강인한 힘이 내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 당겼다. 나는 교사의 손에 이끌려 순식간에 어느 방 안으로 내팽개쳐졌다.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비로소 내가 처한 상황을 인식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화를 냈다가 나중에는 문을 두드리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다시 문이 열렸을 때 교사는 나를 의기양양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잔뜩 움츠러들었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에야 교사를 향해 발악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여기 다시는 안 와!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하지만 상황은 으레 그렇듯이 아이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다음 날에도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그 유치원에 가야만 했다. 맞벌이 부모의 아이를 등원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받아 줄 다른 유치원이 근방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해당 교사는 원장과 어머니가 보는 가운데서 나에게 사과했고, 그날로 나는 다른 반에 배정됐다. 그렇게 사건은 종결됐지만, 내 안에는 인간에 대한 낯선 인상들이 새겨졌다.
이 글은 이미 여러 차례 고쳐 쓴 결과물이다. 처음 쓴 글에서는 아이의 목소리가 거의 가려져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상담실에 가져가서 소리 내어 읽었다. 신기하게도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내 안에서 마치 바로 어제 그 일을 경험한 것처럼 감정들, 특히 슬픔과 무력감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교사에 대한 분노가 빠져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화를 내는 대신 그에게도 피해자로서의 과거가 있었으리라고 추측하며 오히려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가해자의 위치를 전도시키는 방식을 통해 내면의 수치심을 지우고, 나 자신을 ‘이해심 많고 좋은 사람’의 위치에 둠으로써 손상된 자존감을 보상하려 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상처 입은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둘렀던 스노우볼이 어느 틈엔가 너무 단단해져 버려서 혼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장벽이 돼 버린 상황이었다. 그 안에 갇힌 아이의 분노를 되찾는 것이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상담사와 함께 했던 첫 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