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연 Nov 27. 2024

지지 않는다는 말


 ‘무기력하다’는 단어는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다는 의미의 형용사이다. 2020년에 나는 말 그대로 무기력했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침대 밖으로 걸음을 떼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을 만큼. 그 즈음에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내 모습이 상대의 비웃음을 살 만큼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는 않을까 따위를 걱정했던 것이었다. 휴대폰의 카톡 대화창에서 지인이나 친구들과 안부를 묻거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일을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관계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면서도, 주위로부터 고립돼가는 내 모습을 견디기가 두려웠다.


 일상은 느리고, 무겁게 흘러갔다. 일주일에 두세 번 공원을 산책하는 일, 필사, 주 1회의 병원 진료와 정신분석, 산발적으로 적는 일기, 그리고 약간의 집안일 정도가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밖에는 저녁 무렵 때때로 코바늘로 작은 인형들을 떴다. 나머지 시간들은 어둠에 침잠해 있었다. 주로 침대나 소파 위에서. 무언가를 ‘해야 돼’라고 의식하는 순간, ‘하기 싫어!’라고 저항하는 목소리가 맹렬하게 밀고 올라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렸다. 나는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그냥 TV를 켜 두거나,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다.


 소설을 쓰려는 시도는 4월 이후로 멈추었다. 3월까지만 해도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하는 손바닥 소설 강의를 들었다. 그 수업을 통해서 나는 ‘어떤 하루’라는 제목으로 A4 두 쪽짜리 소설을 썼다. 주인공 수민이 직장을 그만두고 동네 책방을 운영하면서, 어느 것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의 하루를 지나보내는 이야기였다.

 “혹시 실제로 책방을 운영하면서 쓰신 글인가요?”

 합평 시간에 누군가가 내 글을 두고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니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을 때 주말마다 작은 책방을 찾아다니며 위안을 얻곤 해서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책방을 열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어요.”

 “아, 네에.”

 상대는 내 답변을 듣고 다소 김이 샜다는 반응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의 짧은 답변 속에 내포된 어떤 실망감을 의식한 것만으로도 부끄러움과, 수치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내가 느낀 부끄러움이란, 소설 속 화자와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는 인식으로부터 유발된 감정이었다. 내가 직장을 그만 둘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선택이 생계를 위협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바깥 세계가 아닌 ‘집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집 안’에서조차 안전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 너는 나약하고 멍청해. 세상은 너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아.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과 수치심으로 가득한 정서들이 내 안을 온통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질문을 한 상대에게 다른 답변을 내놓을 수도 있었다.  

 “이 소설은 실제로 경험한 일을 쓴 게 아니라, 제가 느낀 내적 현실을 반영하여 쓴 글입니다. 일상을 위협하는 크고 작은 외부 요인들로부터 자기 내면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나는 ‘실제하는 현실 앞에서 너의 고통은 사소하고, 너는 그 사소한 고통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외치는 내부의 폭력, 그러니까 고통을 부정하는 목소리로부터 나의 ‘언어’를 지키지 못했다.


 한주 뒤에 진행된 마지막 수업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글을 쓴 상대는 얼굴을 붉힌 채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고, 강사는 깜짝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무의식에서 자행된 복수. 찰나의 쾌감 뒤에 남은 건 자기 혐오와 공허감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스스로를 비난했다.


 손바닥 소설 수업을 마치고, 이어서 신청한 다른 강의는 겨우 1차시만을 출석하고 그만두었다. ‘자기 내면의 풍경을 글로 형상화하여 표현하시오.’라는 과제를 받은 뒤였다.

 첫 문장으로 ‘내 안에는 천 개의 입을 가진 괴물이 살고 있다’라고 썼다. 이어 두어 문단을 적었다가, 모조리 지워버렸다.

 남은 강의에 대한 수업료를 환불받고 나자, 더는 낯선 이들과 함께하는 글쓰기 강좌에 참여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새로운 글에 대한 구상도 멈춰 버렸다.


 그 뒤로 혼자서 도서관을 찾거나 집에서 필사를 하는 방식의 글쓰기만을 계속 이어 갔다. 그해에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과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에리히 프롬의 <인간의 마음> 과 같은 책을 노트북에 옮겼다.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은 이 책이 책장의 한 자리에 꽂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위로와 힘이 돼 주었다.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이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비록 현재의 내 모습이 약하다고 할지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책을 쓰려 하는 상황을 주위 사람들이 응원하지 않고 무시하고 비웃는다 할지라도, 스스로 부여한 이 과제를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글을 씀으로써 종국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이 세계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혼돈처럼 놓여 있었다.

 


 사실 나는 다른 이에게 도움을 받는 게 싫었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 게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 외부로부터 가능 한 모든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4월 중순이었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 병원을 찾았다. 약 10분 정도 의사와 면담을 하는 동안에 마지막 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때 그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느끼는 미안함을 남연 씨 자신에게도 나눠주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이 마음속에 깊게 내려앉았다.


 진료를 마치고 나서 평소에 산책을 다니던 호수공원으로 발길을 향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한낮의 호수를 바라보며 한참 울음을 쏟아냈다. 그러는 동안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린 아이와 만나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