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말과 글은 사람을 향합니다."
회의실 문이 닫히자마자,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분명 같은 회의였고 같은 말을 들었는데, 나오는 순간부터 서로의 표정이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방향이네요”라고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사람은 “근데 이건 데이터가 부족한데요?”라고 바로 반박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을 아끼며 조용히 노트북을 닫았고요.
그때 저는 순간적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르지? 내가 설명이 부족했나?’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날 제가 느꼈던 감정은 “설명이 부족했다”기보다 “내가 사람을 제대로 못 읽었다”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똑같은 말, 똑같은 자료, 똑같은 메시지. 그런데도 누군가에겐 설득이 되고, 누군가에겐 압박이 되고, 누군가에겐 불친절한 말이 되고, 누군가에겐 불안한 근거가 됩니다. 무엇이 달랐던 걸까요.
그 차이는 문장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 차이는 ‘사람’에 있었습니다.
문해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주 듣기와 읽기부터 떠올립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힘”이라고 말하면서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문해력은 글자 안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문해력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진짜 실력을 드러냅니다.
같은 말을 해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같은 글을 써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래서 문해력은 결국 ‘텍스트 이해력’이 아니라 사람 이해력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 이해력은 결국 하나로 귀결됩니다.
“이 사람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하는가.”
“이 사람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써야 하는가.”
이번 글은 문해력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그 마지막 퍼즐을 꿰어보려 합니다.
저는 그 퍼즐을 ‘사람공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가 문해력을 키운다는 건 결국 더 똑똑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해를 줄이고 관계를 살리고, 내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며,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말과 글이 어려운 이유는, 내용이 아니라 ‘사람’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말을 못 하는 게 아닙니다. 글을 못 쓰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분히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고, 충분히 정리해서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일이 꼬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설명을 다 했는데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는 반응이 돌아오고, 메일을 길게 써 보냈는데도 상대는 한 줄만 읽고 엉뚱한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분명 최대한 정중히 부탁했는데 상대는 “왜 이렇게 압박하지?”라고 느낍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말이 부족했나?
내가 글이 길었나?
표현이 문제였나?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사실 이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의 방식에 맞춰 전달했는가?”
사람마다 세상을 처리하는 속도와 방식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결론이 먼저이고, 누군가는 과정이 먼저입니다. 누군가는 감정이 먼저이고, 누군가는 데이터가 먼저입니다. 누군가는 가능성에 집중하고, 누군가는 리스크에 집중합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해력의 마지막은 어쩌면 ‘표현력’이 아니라 맞춤형 전달력입니다. 이제부터는 그 맞춤형 전달력을 만들기 위해, 현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유형을 중심으로 말하기와 글쓰기 전략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람유형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말하기·글쓰기 전략"
사람은 무조건 유형화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늘 변하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향은 반복됩니다. 특히 일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이상할 만큼 비슷한 패턴을 보여줍니다.
저는 그 패턴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것만 잡혀도 말과 글이 훨씬 쉬워집니다.(회사경험기반)
결론형(빠른 사람)
과정형(꼼꼼한 사람)
관계형(감정 중심 사람)
비판형(의심 많은 사람)
1) 결론형: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찾는 사람
결론형은 말이 시작되면 벌써 결론을 찾습니다.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뭘 하자는 거죠?”
“결론이 뭔가요?”
“최종안은 어떤가요?”
이 유형은 느긋하게 배경부터 설명해 주면 오히려 불편해합니다. 그들에게 긴 설명은 친절이 아니라 지연입니다. 그래서 결론형에게는 말하기도 글쓰기도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결론을 꺼내고, 그다음에 이유를 붙여야 합니다. 결론을 말하지 않은 상태에서 근거부터 나열하면, 결론형은 집중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상대는 ‘듣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버티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결론형과 이야기할 때는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제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려 드리고, 그다음에 왜 그런지 설명하겠습니다.”
말하기에서든 글쓰기에서든 첫 문장이 사실상 승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A안을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유는 길게 늘어놓지 말고, 두 가지 정도만 정리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딱 그 정도면 결론형은 납득합니다. 사람에겐 각자의 처리 속도가 있으니까요.
2) 과정형: 결론보다 근거가 먼저인 사람
반대로 과정형은 “왜”를 먼저 봅니다.
이 유형은 결론이 빠르면 불안해집니다. 결론을 던져놓고 “왜냐하면요…”라고 이어가면, 그 사이에 과정형은 이미 마음속으로 체크리스트를 꺼내 들고 있습니다.
“근거는 충분한가?”
“변수는 고려했나?”
“대안 비교는 했나?”
“가정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과정형에게는 결론이 아니라 ‘신뢰’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신뢰는 근거에서 나오지, 말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정형에게는 배경-기준-근거-결론의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서두르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천천히 설명하는 것이 설득입니다. 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정확성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정형에게 보내는 글은 ‘감성적인 표현’보다 ‘구체적인 근거’가 더 효과적입니다. 숫자든 표든 비교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가 보이도록 써야 합니다. 이럴 때 과정형은 이렇게 느낍니다.
“이 사람은 감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검증하고 말한다.”
“그러면 믿을 수 있다.”
3) 관계형: 말의 내용보다 말의 온도를 먼저 느끼는 사람
관계형은 사실 가장 어려운 유형입니다.
왜냐하면 관계형은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의 내용보다 말의 태도를 먼저 읽습니다. 같은 문장을 들어도 관계형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지시 같아.”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야.”
“왜 나한테만 이렇게 차갑지?”
이 유형과 대화할 때는 정말 작은 표현 하나가 관계 전체를 흔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형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존중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관계형은 말의 문장을 듣기 전에 마음을 확인합니다.
“나를 존중하는가?”
“나를 믿는가?”
“내 상황을 이해하는가?”
그래서 관계형에게는 공감이 먼저입니다. 공감은 상대를 움직이는 문해력입니다.
“요즘 일정 타이트하신 거 알고 있습니다.”
“바쁘신데도 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문장은 일을 어렵게 만드는 문장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더 빠르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감정이 정리되어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에서도 관계형에게는 “요점만 말하겠습니다”가 오히려 싸늘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짧은 글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닙니다. 관계형은 짧은 글을 “냉정함”으로 해석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관계형에게는 짧더라도 문장에 온도를 담아야 합니다.
4) 비판형: 의심이 많은 게 아니라 리스크를 보는 사람
비판형은 종종 오해를 받습니다. “왜 저렇게 부정적이지?” “왜 저렇게 트집을 잡지?” 하지만 비판형의 마음속에는 대부분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건가?”
“이거 나중에 터지면 어떡하지?”
이들은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검증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판형에게는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안 됩니다. 그들의 질문은 나를 평가하려는 질문이 아니라, 안을 점검하려는 질문입니다. 비판형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말하기·글쓰기 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먼저 리스크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리스크는 A입니다. 다만 B로 완화 가능합니다.”
이 한 문장은 비판형의 마음을 확 눌러줍니다.
“이 사람도 리스크를 보고 있구나.”
“그럼 믿어볼 수 있겠다.”
비판형은 리스크를 숨기는 사람을 싫어하고, 리스크를 인정하는 사람을 신뢰합니다.
실행 가능한 3가지 방법: 말과 글이 편해지는 루틴
사람유형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지지만, 결국 삶을 바꾸는 것은 실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마지막 글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실행”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실행 1) 대화 전 10초, 상대의 우선순위를 떠올리기
대화를 시작하기 전, 아주 잠깐만 멈춰보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결론을 원할까?”
“이 사람은 근거를 원할까?”
“이 사람은 존중을 원할까?”
“이 사람은 리스크 검증을 원할까?”
이 질문을 단 10초만 해도, 말투가 달라지고 문장 구조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10초가 관계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실행 2) 말하기/글쓰기 템플릿을 4개만 만들어 두기
우리는 피곤할수록 말이 거칠어지고, 글이 차가워집니다. 그래서 템플릿을 미리 만들어야 합니다.
결론형 템플릿: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입니다. 이유는 2가지입니다.”
과정형 템플릿:
“기준은 B이며, 비교 결과는 C입니다.”
관계형 템플릿:
“바쁘신데 감사합니다. 이 부분만 가능하실까요?”
비판형 템플릿:
“리스크는 D이며, 대응은 E로 준비했습니다.”
이 네 가지만 있어도 말과 글이 훨씬 덜 흔들립니다.
실행 3) 하루 5분, “오늘 사람공부” 기록하기
문해력은 결국 기록에서 성장합니다. 사람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만난 사람을 떠올리며 이런 질문을 적어보는 겁니다.
- 오늘 그 사람의 유형은 어떤 쪽이었나
- 내 말/글에서 어떤 부분이 막혔나 다음엔 어떤 방식으로 바꿔볼까
이 기록이 쌓이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더 이상 “감”이 아니라 “기술”이 됩니다.
기대효과: 문해력이 ‘사람 앞에서’ 빛나기 시작합니다
이 루틴이 쌓이면 변화는 아주 현실적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오해가 줄어듭니다.
“내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라는 말이 줄어듭니다. 왜냐하면 전달 방식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니까요.
다음으로 신뢰가 늘어납니다. 사람은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일을 잘 되게 하는 사람”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 결국 문해력이 높은 사람입니다. ㅂ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감정 소모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사람 때문에 피곤한 일이 줄어듭니다. 갈등이 줄어들고, 관계가 안정됩니다. 그 결과로 에너지가 남고, 그 에너지는 성과와 성장으로 다시 연결됩니다.
그리고 AI 시대에는 이 힘이 더 커집니다.
AI는 문장을 만들어주지만, 사람의 감정까지 설득하지는 못합니다. AI는 보고서를 써 줄 수 있지만, 회의실에서 분위기를 바꾸지 못합니다. 결국 AI 시대의 문해력은 “정보 처리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으로 확장됩니다.
문해력 시리즈의 마지막 글을 쓰며, 이 글은 문해력 브런치 시리즈의 마지막 글입니다. 돌아보면, 처음에는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며 오히려 스스로도 계속 리마인드 하게 되었습니다.
문해력은 거창한 능력이 아니라는 것.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는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 끝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는 것.
결국 문해력이란,
‘내가 아는 것을 정리하는 힘’이면서 동시에,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는 힘’이며,.‘사람 사이의 오해를 줄이고 신뢰를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크게 남은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문해력은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실천하는 사람만 삶이 바뀝니다.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읽고 끄덕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요. 결국 작은 루틴 하나를 시작하는 순간, 삶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오늘부터는 이렇게 마음먹어보려고 합니다.
“나는 말하기를 잘하려고 하기 전에, 사람을 이해하자.”
“나는 글을 잘 쓰려하기 전에, 상대의 마음을 먼저 읽자.”
“나는 설명하기 전에,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추자.”
이 마지막 글이 글 읽는 분들에게도 그런 다짐을 남겨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문해력은 결국, 삶의 태도입니다. 그 태도가 습관이 될 때, 우리는 사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총 30개 글을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실천의 시작입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