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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복이야 May 16. 2024

안간힘

일기  20240516


일단 나선다.

오전 9시 30분.

햇살 속을 걷는다.

생각보다 바람이 차다.

바람에 무릎까지 오는 치마가 펄럭거려

집으로 다시 깔까 하다 그냥 걷는다.

얼마 전 예약해 둔 '독서 운영자 모임' 강의를 들으러 간다.

우연히 구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보고

막연히 들으면 좋겠다 싶어 신청했다.

가면서 나는 이것을 왜? 들으러 가는가  생각한다.

특별히 당장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일단 가는 길이다.

이렇게 목적이 뚜렷하지도 않은데 참석하는 것이 맞나 의문이다.

집에 있으면 땅속까지 내려앉을 것이므로 나선다.

몸이 안 좋으니, 마음이 안 좋은가

마음이 힘드니, 몸이 힘든가 하고 잠시 고민한다.

뭐가 됐건 몸도 마음도 놓쳐버릴 것 같아 무섭기도 하고

링거라도 맞아야 하나 할 정도로 무겁기도 하다.

우울함이 너무 심한 것인가 생각도 한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동생이

 "언니, 입맛은 있어요?"라길래

"응"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절대 아니란다.

우울증은 그럴 수가 없단다.

그 말이 맞는 거 같지만 내 보기엔 심상찮은데

남 보기엔 심상하니 다행이다 싶다.

애가 하교한 후부터는 계속 아이를 따라다닌다.

두어 군데 학원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그 사이 소아청소년과도 갔다.

아프다고 하면 다들 싫어하지만, 공식적으로 아프다고 해도

싫어하지 않는 곳이니 애 진료를 보가 나도 봤다.

성격 좋은 선생님은  내 성격이 좋다고 한다.

그건 아닌데 그렇다고 여기니   약간 징징거려 본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이 항생제와 진통제와 소화제와 알레르기약과 기침약을 한가득 준다.

아이 머리가 길어 미용도 갔다.

안과도 다녀오고 약국은 두 군데나 다녀왔다.

그러니 저녁이다.

진이 빠진다.

하루 종일, 쓸 이야기를 생각해도 도통 떠오르질 않는다.

늘 비슷하긴 하지만 근 일주일은 정도가 심하다.

진이 빠진 저녁에 답답함까지 더해진다.

이런 말을 써도 되나 고민도 한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데

하물며 우울한 이야기는 누가 듣고 싶을까.

며칠, 내 글에는 우울함이 있는 거 같아 신경이 쓰인다.

오늘도,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노트북만 보고 앉았다.

다행히 노려보지는 않고 한숨을 쉬지도 않고

그냥 화면만 계속 쳐다보고 있다.

얼마 전 과제 때문에 작법서를 읽었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이다.

171페이지에 이런 말이 있다.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결국 세상에 완한 것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 것을 잘라내고 수밖에 없다.'

괜히 이 문장에 기대어 본다.

부끄러움도 내려놓고 자괴감도 내려놓고 그냥 쓴다.

글은 마음을 내어놓는 일.

오늘 나의 마음은 이렇다.

실없는 얘기를 하니 마음이 실실 대는 거 같기도 하고

털어 넣은 항생제와 진통제가 효과를 내는 거 같기도 하다.

오늘 밤은 자는 도중 깨지도 않고 꿈도 꾸지 않고 자야지.

육아서였는지 어디서 그냥 들은 얘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잠들고 나서 아이 귓속에 예쁜 말을 해주면 아이가 듣는다고 했다.

나도 오늘 잠이 들고 나면 누군가 축복의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럴 일은 없으니 녹음이라도 해서 들으면서 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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