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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복이야 Mar 27. 2024

편식쟁이가 처음 막창을 굽다

20240327

편식이 심하다.

지금은 못 먹는 것을 세는 것이 빠르지만 어렸을 때는 그 정도가 어땠냐면 먹을 수 있는 건 오직 김, 계란, 멸치 정도로 열 손가락필요 없다. 생각해 보면 비위가 약해서가 주된 원인이었지 싶다. 7080들(80년대생 아닌데 교묘히 묻어감)라면 좋아하는 소시지나 햄도 못 먹었다. 하얀 밥 위에 잘 구워진 햄 한 조각이면 밥 한 공기 뚝딱이지만 특히 스팸은 그 비릿하고 느끼함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주부가 된 지금, 그때 엄마가 매 끼니 차려내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 고마워, 미안해, 그 노고에 절로 존경스럽다. 지금은 못 먹는 것이 거의 없지만 아직도 물에 빠진 고기나 식감이 물컹한 어떤 것들과 발, 내장, 꼬리 뭐 이런 느낌의 것들은 먹고 싶지도 먹어보고 싶지도 않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편식은 한마디로 쪽팔렸다. 학창 시절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먹고 도시락도 내 맞춤이니 전혀 상관이 없었는데 말이다. 대학시절 학생식당에서 열무비빔밥이 나왔다. 모두가 그걸 먹는데 나는 못 먹는 음식이므로 당연히 돈가스!! 열무를 먹을 줄 알아도 간고기와 전분과 튀김옷으로 무장해서 생고기 느낌은 없는 돈가스지!! 선배하나가 정말 신기한 애네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한마디 했다. 난 당황스러움에 속으로 외쳤다. 왜? 못 먹을 수도 있지. 췟.

회사 다닐 때 회식으로 회를 먹으러 가던 날도 난감했다. 하지만 성격상 내가 못 먹는다고 혹은 내가 싫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안 먹으면 되니까. 다들 좋아하는데 초를 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를 지켜보던 사람이 한마디를 한다. 챙겨주는 마음인걸 알지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이 영 불편했다. 애써 웃으며 속으로 외친다. 괜찮아요. 다들 신경 쓰지 마세요. 제발요.

그런데 가만 보면 바닷가가 있는 시골에 사는 애가 열무도 회도 못 먹는 게 웃기긴 하다.



제일 난감했던 때는 지금의 남편인 남자친구의 집에 처음 놀러 갔을 때였다.

어머님이 아들의 여자친구가 왔다고 식사를 준비해 주셨는데 소고기를 구우시는 게 아닌가. 난감했다.

닭은 겨우 고등학생이 됐을 때 그것도 양념치킨만 후라이드 놉. 삼계탕 지지. 양념맛으로 겨우 치킨을 먹었다. 돼지고기는 대학시절 자취로 배고팠던 시절에 먹기 시작했다. 선배가 사준 대패삼겹살이 너무나 맛있었서 친구랑 먹다 보니 10인분. 이후 대패삼겹살을 몹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고기는 아직 힘들었다. 엄마가 소고깃국을 끓이면 고기 건더기는 아빠국그릇으로 옮기기 바빴다.

그런데 소고기라니. 첫인사에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지 싶어 꾹 참고 밥을 잔뜩 떠서 밀어 넘겼다. 속이 비릿하고 울렁거리고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참아야지. 안돼. 내 남자 친구의 엄마에게 이런 모습은 안되지.  그렇게 처음 구운 소고기를 삼킨 후 희한한 게  소고기가 괜찮았다. 굳이 찾아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거부는 하지 않았다.

지금은 누가 사준다면 냅다 가서 감사히 먹지.

그다음  남자친구집에 놀러 갔을 땐 아버님이 자주 가는 단골 횟집으로 데려가셨다. 일부러 멀리 있는 곳까지 갔기에 안 먹을 수도 못 먹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회에 초장을 듬뿍 찍고 간장도 찍고 참기름이 든 쌈장에도 찍어 회가 회인지 티가 나지 않게 해서 꿀꺽 삼켰다. 오. 괜찮다. 그런데 단골이라고 사장님이 멍게랑 해삼이 개불을 가지고 오신다. 아. 울 엄마가 너무 좋아하는 그거네. 아~나는 진짜 진짜 생긴 것도 향도 싫어하는 그거네. 차마 그건 목으로 넘길 수 없어 몰래 남편에게 패스했다. 그런데 또 웃긴 게 그 후로는 회는 좋아하게 됐다. 지금은 회라면 사랑하지요.



엄마랑 아빠는 그렇게 먹으라고 해도 안 먹던 음식을 어느샌가 먹게 된 나를 신기하게 보셨다.

편식이 줄어든 걸 보고 기특해도 하셨다. 기특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성인인 자식임에도.

어릴 적에는 확실히 감각이 예민하고 비위도 약해서 못 먹었다.

원래 나는 못 먹는다는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은 탓도 컸다. 식욕이 왕성하지도 양이 많지도 않았기에 음식에 대한 욕구가 크지 않았다. 성장기 때 두려워하지 않고 좀 먹었다면 난쟁이똥자루 만한 내 키도 좀 더 컸으려나.  지금은 양도 많고 식욕도 좋다. 노화가 어울리는 나이 당연히 키는 안 크고 옆으로 앞뒤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여하튼.



13살 입이 짧았던 딸이 성장기라 그런지 편식이 줄어들고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일주일 전부터 어디서 봤는지 곱창 뭐냐고 묻는다. 먹어보고 싶다고.

앞으로도 진짜 먹고 싶지 않은 건 닭발이라던가 닭똥집이라던가 곱창, 대창, 막창 뭐가 다른지 알고도 싶지 않은 내장들이다. 그런데 딸이 먹고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곱창이라.



얼마 전 친구네 급작스런 초대를 받았다.

저녁식사 벙개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을 데리고 간 친구네에는 예쁘게 차려진 음식들이 있었다.

'언니를 위해 준비했어요.' 하는데 아직 친해지는 단계였던 우리는 서로의 식성을 몰랐다.

메인은 막창이었다. 오우 이런. 어쩐다.

못 먹는다 하기엔 미안하고 진짜 저건 입에 넣을 수 없는데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큰맘 먹고 못 먹는다 말을 했는데도 정이 많은 동생은 권한다. 못 먹는다. 아니 먹어봐요. 아니 된다. 에이~

결국 상추와 깻잎과 부추를 잔뜩 들고 그 속에 한 조각을 겨우 넣었다.

어라, 괜찮네. 한 쌈, 두 쌈... 엄마들은 대화로 바쁜데 나는 계속 먹었다.

'어머 언니, 못 먹는다? 이게 뭔 일이야?' 성격 좋은 동생이 웃으면서 장난치는데 난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기억에는 바싹바싹 구운 막창은 맛이 괜찮았으므로 딸에게 같은 집에서 배달을 해줘야지 했다.

곱창이든 막창이든 비슷하겠지 뭐.

하필 그 가게가 일주일만 쉬어요 문구가 일주일이 넘게 떠 있다. 그러더니 결국 이름이 없어졌다.

그래서 고민하다 새벽배송으로 냉동 막창을 시켜 구워 주기로 했다.

그날이 오늘이다.

내가 막창을 굽는 날이 다 오는구나. 최대한 노릇하게 구우려 에어프라이어를 돌리고 또 돌렸다.

띵~!! 드디어 구워진 막창을 딸아이에게  내놓자 감탄을 하며 먹는다.

어린 딸은 나보다 빨리 편식이 줄어들어 못 먹는  음식이 하나 둘 없어 감사하다.




좋아했던 것이 싫어지거나 시들해지기도 하고 싫어하던 것은 좋아지기도 하고  못 먹던 것들도 먹게 되고 나의 편식은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었다.

첫 느낌으로 거부하고 멀리하는 것들이 많다.

편식과 편견은 닮은 구석이 있구나.

편식으로 내가 성장해야 할 때 영양분을 얻어서 나의 키가 자라지 못한 아쉬움이 있듯

편견으로 내가 느낄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어떤 것들을 놓치진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 사람과 더 마음을 나눌 수 있었거나 다른 면을 찾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맛보고 경험하고 시도해보지 않는다면 음식들의 단맛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막창을 맛나게 먹는 딸을 보며

나이가 들수록 나의 경험치만으로 통계를 내고 더 확고한 편견을 가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근데 또 보면 내 통계치가 틀리진 않는데..

관상은 과학이고 인상에는 딱 그 사람 성격이 보이는데..

오락가락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내 손으로 구운 막창을 입에 넣었다.

바싹, 물컹, 옴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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