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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복이야 Mar 29. 2024

달고 난감한 쿠폰 3개

feat. 서른하나의 달달함이 있는 곳  20240329


기프티콘이 쌓였다.

나도 너도 편하고 좋은 기프티콘.

멀리 있는 너에게도, 만나기 힘든 너에게도, 대면으로 이야기 나누기 어색한 너에게도,

큰 금액이 부담스러운 너에게도, 취향이 확고한 너에게도, 부담 없이 보낼 수 있는 마음.

마음을 보내기엔 어색하고 마음을 배제하기에는 난감할 때 좋은 기프티콘.



받아서 제일 부담이 없는 건 커피쿠폰이다.

커피 맛을 알아서는 아니고 그냥 카페인이 들어가야

정신을 차리고 움직일 수 있는 애 키우는 엄마여서도 그렇고 당충전이 중간중간 필요한 나이어서도 그렇다.

선호하는 가게는 있지만 다행히 동네에 웬만한 브랜드가 다 있어서 어떤 종류를 받아도 상관없어서 더 편하다.

하지만 내가 즐겨 먹지 않는 종류의 먹을거리는 난감한데 특히 제일 곤란한 것은 아이스크림케이크다.

모양도 예쁘고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막상 다 먹을 수도, 먹어서도, 먹어 본 적도 없다.

늘 촛불을 불고 축하를 하고 행복한 한 스푼을 하고 나면 주르륵 녹아버리는 달고 난감한 것.



내 쿠폰함에 그 달고 난감한 쿠폰이 3개나 있다.

그중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쿠폰을 먼저 써야겠다.

작년 봄쯤

서울소재 대학을 다니게 된 나의 조카가 보낸 것이다.

고모가 되어서 신경을 못 써줬나 마음이 쓰이던 차에 서로 가까운 대학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조카가 잘 먹고나 있나도 싶고

고기라도 양껏 먹일 생각에 어린 두 애들을 데리고 나섰다. 덕분에 우리 애들도 좋아하는 사촌오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짧은 만남 후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애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집으로 갔다.

서른한 가지의 환상적인 맛이 있는 그곳에서

달콤한 시간을 보내다 무뚝뚝한 조카가 말했다.

"고모 애들 생일은 언제예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냥 이렇게 챙겨주시니 감사해서 저도 애들 생일 정도는 챙겨주려고요."

늘 명절에 만나면 말수가 별로 없이 웃기만 하던 조카의 생각이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내가 20대 후반이었을 때,  3살쯤이던 조카가 멜빵바지를 입고 사과를 굴리고 있던 치명적인 모습을 보고 홀딱 반했었다. 애가 이렇게 대학생이 되어 이런 생각도 하는 올바른 청년이 되었다니.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속으로 뿐 아니라

연신 어머머를 연발하며 찐 감탄사를 계속 내뿜었다.

아마도 엄마 같은 마음에 비타민에 영양제에 이것저것 챙겨가고 용돈을 쥐어준 것이 고마웠나 보다.

쑥스럼 많던 아이가 이렇게 똑똑히 마음을 표현하다니 내심 놀랍고 고맙다.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번에 또 봐~하는 인사 같은 말을 건네며 헤어지고 얼마 안 있어 카톡이 왔다.

조카가 보낸 아이스크림 쿠폰이다.

이구~자기 쓸 돈도 모자랄 텐데 이런 걸 왜 보내냐며 문자로도 잔소리를 한다.

애들이 좋아하니 또 사주라는 말에 마음을 거절할 수는 없고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그 쿠폰이다.

받으면 제일 난감한 쿠폰에

사랑하는 조카가 기특한 생각을 담아 주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면 거진 다 버릴 것이 분명하고 녹여서 버리긴 너무 아까운 조카의 마음이 들어있으므로 두고도 조금씩 먹을 수 있는 것들로 바꾸어 산다.

아빠는 녹차맛, 첫째는 민트초코, 둘째는 엄마는 외계인, 나는 피스타치오 아몬드.

고민 없이 바로 고를 수 있는 거의 몇 안되는 것중에 하나. 확고한 우리 가족 아이스크림 취향.

받으면 별로 달갑지 않은 선물이던 아이스크림케이크가 우리 가족의 저녁을 행복하게 해 준다.

달달한 마음을 꺼내 속을 달달하게 채웠으니 오늘은 달달한 꿈을 꾸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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