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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한 도담이 Oct 19. 2022

화장실 청소가 이렇게까지 재난이 될 일인가?

청소하려다 변기를 해체하다.

그런 날이 있다.

며칠 한쪽 눈을 감고 모른 척 미루던 일을 오늘은 해치우고 말겠다는 결의가 갑자기 샘솟는.


어제는 그 대상이 ‘욕실 청소’였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아침부터 지하를 제외하고 총 세 개의 화장실+욕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사건은, 안방에 딸린 변기를 청소하고 있을 때 벌어졌다. 열심히 박박 문지르는데 갑자기 뭔가 손잡이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이 느껴졌다. 뭐지?

불안한 마음에 슬며시 꺼낸 청소 막대 끝에 달려 있어야 할 일회용 솔이 사라져 있었다.


‘두둥!’

.

.

.

억겁 같은 삼 초가 흐르고, 세제 덕분에 온통 파랑이어서 잘 보이지 않는 변기 속으로 막대를 휘저었지만 걸리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혹시나.. 떠내려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물을 내렸다. 그리고 들리던 불길한 ‘꾸르륵’ 소리. 망했구나.

plumber라고 부르는, 배관공은 부르는 게 값일텐데. 설명은 또 영어로 어찌 알아먹게 한담. 언제 올지도 알 수 없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저기 갖가지 물건들 -옷걸이, 봉지와 테이프 등등-울 가져다가 별의별 노력을 다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홈 하드웨어(캐나다 철물 잡화점)에 가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직원 할아버지한테 물어보고(이 와중에 세상 안됐다는 표정으로, 슈퍼 울트라로 친절하셨던…) 이상하게 생긴 전문 도구 같은 것을 추천받아서 사들고 왔다.

요렇게 생긴 도구. 사용법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 기술(?!)로는 역부족이었고, 드디어 같이 사는 ‘공대 오빠’ 남편에게 이실직고를 했다. 사고뭉치가 사고를 쳤노라고. 그는 집에 가서 본인이 살펴보겠다고 했고, 또다시 억겁 같은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갈 동안 내 마음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었다.  

지난 내 행동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반성이 물밀듯 밀려와서 ‘솔이 잘 끼어있나 확인했어야 해, 왜 물을 내렸을까?’를 거쳐 급기야 ‘청소는 왜 했을까’에 이르렀다.



그리고 드디어 귀가한 ‘공대 오빠’는.

결국 변기를 해체(!)하는 극단의 조치를 통해 문제의 솔을 찾아 빼내어 해결했다. 한국은 보통 변기 밑단을 실리콘 등으로 막아 두는데, 건식으로 욕실을 쓰는 까닭인지 캐나다는 그냥 나사 같은 것으로 고정만 하는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대재난의 시대.jpg

“엄마 와보라고 해.”

소리가 진짜, 정말, 어찌나 반갑던지.

이제 우리 식구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 될 이 날의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후아.

무슨 일이든 해결이  때까지 걱정뿐인 나에겐 시절부터 , 한결같이 “  아니야.”라고 무심한  안심시켜주고 때로는 직접 해결도 해주는 남편의 존재가 , 고맙고 위안이 된다. 가끔은(혹은 자주..!) 그의 그런 묵직함이 너무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나는 안다. 호로록~ 끓어오르는 나에게  필요한 찬물  컵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예뻐 보이는 나의 ‘공대 오빠’를 위해서 오늘 저녁 메뉴는 좀 신경을 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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