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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Jan 31. 2023

눈이 오는 날

 눈이 오는 날의 눈은 무엇에도 좋은 핑계가 된다. 눈이 와서 늦잠을 자고, 눈이 와서 창밖을 오래 보고, 눈이 와서 카페에 가기로 했다. 전화 속의 어머니는 “눈이 오니 밖에 나가지 말아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지키지도 않을 알겠다는 말을 웅얼거렸다. 눈이 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카페에 앉아 글을 조금 읽고, 다시 글을 쓴다. 한 글자를 적으려면 백 글자를 읽어야 한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는데. 몇 글자를 더 적으려 몇 페이지를 더 읽었다.

 오랜만에 간 단골 카페의 사장님은 “눈을 뚫고 오셨네요.” 하는 인사를 건네셨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눈이 와서 왔습니다.” 하고 답했다. 오늘따라 작가인 척 하는 것 같아 더욱 멋쩍었지만, 눈이 오니까요. 사장님은 내가 주문한 뜨거운 커피와 내가 주문하지 않은 빵을 내어주셨다. 이 또한 눈이 오기 때문일까. 무엇에도 답하지 않은 채 눈은 창밖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침에는 l이 담벼락을 찾아왔었다. 이제는 사료가 다 떨어져버렸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가 찾아온 것도 눈이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적어도 이곳에는 몸을 누일 상자와 헌 이불이 있으니까. l은 담벼락에 앉아 오랫동안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한 한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고양이 위에 눈은 얕게 쌓였다. j와 k는 어디에 있을까. 눈을 맞고 있진 않을까. 눈이 와서 그런 걱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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