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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Feb 20. 2023

유연함

늦겨울 편지

 어느새 날은 봄을 향해 가고 있다. 당신은 3월이 무슨 봄이냐며 외투 속으로 몸을 움츠리곤 했었는데.   

  

 확실히, 요즘의 날씨는 이전의 기준과 맞지 않다. 항상 가을이었던 나의 생일은 점점 겨울이 되어가고 초여름이었던 당신의 생일은 이제 완연한 더위를 품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내내 서운했는데, 당신은 그런 것에 한 번도 연연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이미 변해버린 것이고, 사는 사람은 그저 사는 거라며. 겉으로는 공감을 좀 해 주라며 투정을 부렸지만, 사실은 그 유연함을 사랑했다. 어떻게든, 주어진 환경에서 잘 살아보려는 마음이 참 예뻐서.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나는 이제서야 당신을 따라 잘 살아보려 하는 중이다. 눈이 오면 잠시 기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날지라도 금세 털어버리는 식으로. 주어진 환경을 잘 살아가보려는 식으로.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도 참 오래되어버린 오늘은, 문득 3월이 가까워오는데도 풀리지 않는 추위가 꽤나 괜찮게 느껴졌다. 난로를 틀지 않으면 여전히 겉옷을 입고 있어야 하는 방도, 늦은 시간까지 잠 못 들던 어제의 밤도 그랬다. 다 괜찮았다. 괜찮았다기보단, 그 안에서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당신을 따라 조금 유연해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가올 봄에는 계절을 따라 조금 더 풀어져 볼 생각이다. 좋은 일에는 꾸밈없이 웃고, 슬픔이 지난 자리에는 좋은 씨앗들을 뿌려 꾸밈없이 웃을 또다른 일들을 만들어보려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누군가는 나의 마음을 보고 또 예쁘다, 해 줄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나는 이제야 당신의 발자국을 따라 느리게 걷고 있다. 그러면서 삶의 행복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당신은 이 방향을 따라 멀리도 걸어갔으니 아마 이미 행복을 찾았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유연하고 아름답게, 내가 모르는 누군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할 당신의 삶이 부럽고 한켠으로 다행스럽다.

 그럼 안녕, 또 닿지 않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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