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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Dec 31. 2022

겨울 편지

 오늘도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멀리 있는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당신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아프진 않고, 이 추운 날에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을까요.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귀찮다며 매번 잊고 살던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서툴게 지어보던 웃음들도 요즘에는 제법 자연스럽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다 보니, 잊고 싶었던 일들이나 기억하면 매번 마음이 먹먹하던 일들도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일이 철없이 좋기도 합니다.     


 지난 며칠간은 눈이 많이 왔습니다. 작은 아이만한 눈사람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로요. 한참 눈을 모아 눈사람을 만들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눈을 쓸어모은 자리가 다시 하얗게 덮일 정도로요.

 어느 눈 내리던 겨울, 전화기 속 목소리로 작게 전하던 당신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지금 거기도 눈이 내리지? 그 펑펑 내리는 마음이, 딱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이야. 하늘 가득 내리는 눈만큼, 온 세상이 덮여 하얘질 만큼. 그만큼 사랑해.” 하고 말하던, 그 이야기요. 당신의 이야기에 나는 놀랍고 고마워서 시답잖은 대답을 얼버무렸었는데, 그 사랑스럽던 목소리가 나는 눈도 그쳐버린 오늘에야 떠올랐습니다.     


 그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문 채 당신의 목소리로, 떨리지만 차분히 전하던 당신의 언어로, 당신의 웃음과 표정과 작은 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한참 당신을 기억하다가, 추억하다가. 나는 그제야 내가 당신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맑은 웃음도, 나를 보던 당신의 눈동자도, 겨울마다 흰 입김을 내어보던 당신의 입술도. 잊고 살 거라고, 바쁘게 살다 보면 잊힐 거라고 했던 그 모든 것을 나는 여전히, 조금의 변함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보고 싶습니다. 지금의 나와 당신이 그때의 우리로부터 얼마나 다르더라도, 얼마나 멀어져 있더라도 괜찮습니다. 그 때의 우리가 갖고 있던 빛나던 꿈과 낭만들을 당신이 전부 잃어버렸다 해도, 당신의 우울이 당신을 아무것도 아니라 해도 상관 없습니다. 지금의 내가 필요한 것은 당신도 나를 보고싶어 한다는 마음, 그것 하나 뿐입니다. 그렇기만 하다면 우리는 세상 어디에 있든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저 보고 싶다는 한 마디를 적으려고 펜을 들었습니다. 사실 이전의 모든 편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시간들 동안 내가 적은 모든 글자들만큼, 몇 권의 책을 하얗게 덮을 만큼. 그보다 더 나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그것을 문득 깨달은 오늘은, 그래서 더 당신의 안부를 궁금해합니다.     


잘 지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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