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밤 – 기억과 기록
열일곱 번째 밤, 우리는 다시 조용한 선술집 자리로 돌아왔다. 이날 주제는 조금 특별했다. 바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물었다. “자네가 이거 다 적고 있다지? 어디에 쓸 생각인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 솔직히 밝혔다. 한국의 한 잡지에 기고할 계획이라고. 재일조선인 1세대의 구술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할머니는 “잘 생각했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얘기가 대단한 건 없지만… 누군가는 써둬야 하지 않겠나. 안 그럼 다 잊혀져.” 그녀는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증언자는 사라진다. 실제로 할머니 또래의 1세대들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가장 혹독했던 시대를 통과한 세대가 떠나면, 후대는 그 시절을 체험으로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기록이 중요했다.
할머니는 얼마 전에도 자신이 다니는 조선인 모임에서 젊은 연구자들에게 인터뷰를 해준 적이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데. 내가 아는 한 다 얘기해 줬지. 젊은 사람들 고생이야 발바닥에 때만큼도 안 되겠지만, 그래도 알아야지.” 그녀는 작은 농담을 섞어 웃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라고 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직감적으로 깨달은 듯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힘들었던 기억을 계속 떠올리시기 괴롭진 않으세요?” 할머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솔직히… 괴롭지. 근데 잊는 게 더 무서워. 난 매일 기억하려고 애쓴다네. 내 남편, 동생, 부모… 다 떠나갔어도 나만이라도 기억해야 하니까.” 그녀는 머리를 토트며 흐린 눈을 감았다. 나도 같이 숙연해졌다.
“이제 다 살았지만, 내 기억이 남아서 누군가에게 교훈이 된다면 좋겠네.” 할머니는 힘주어 말했다. 그녀는 특히 조국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재일동포의 역사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한국 사람이란 걸… 우린 버림받았던 게 아니라 시대를 잘못 만난 피해자란 걸 알아주면 좋겠어.” 그녀는 한때 일부 한국 사람들이 재일교포를 “왜국 것”이라며 멸시한다는 얘기를 듣고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느낀다고 했다. 케이팝 팬들이 신오쿠보 한인타운에 찾아와 즐기는 모습을 보며, 한국 본토와 동포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 걸 실감했다고. “젊은 친구들은 우리 보고 일본인 아니냐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이 기록을 하는 나 자신도 사실 반성을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재일동포들의 구체적 삶을 몰랐다. 같은 민족임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한숨이 그 역사에 담겼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남기는 일이 사명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숙소로 돌아와 지금까지 적은 노트를 다시 훑어보았다. 할머니의 말투, 표정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빠뜨린 것이 없는지 점검했다.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는 작업은 생각보다 조심스러웠다. 개인의 인생이기도 하지만, 한 시대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고 자료도 찾아보았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각주로 달아 두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할머니의 경험이 특수한 개인사인 동시에 보편적 역사임을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내게 이런 당부를 했다. “나 같은 조선적 할머니들이 아직 조금 남아 있다네. 우리 살아있는 동안 많이들 찾아와 이야길 들어주면 좋겠어.” 그녀의 소망은 자신의 기억이 살아 있을 때 최대한 전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꼭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겠노라 약속드렸다. 그녀는 “고맙네… 고맙네”를 반복했다. 나야말로 깊은 감사와 책임감을 안고 숙소 창가에 앉아 글을 써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