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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적(朝鮮籍) 할머니와의 열흘

열여덟 번째 밤 – 세대 간 대화

by 나바드

열여덟 번째 밤에는, 할머니와 그의 자녀 세대(2세) 한 분, 그리고 손주 세대(3세) 한 분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나는 이를 세대 간 대화의 장으로 보고 귀 기울였다. 2세대 대표로 나온 이는 할머니의 큰아들(60대 남성)이었고, 3세대는 열네 번째 밤에 만난 그 청년이었다.


셋이 한자리에 모이자 처음엔 어색한 웃음이 흘렀다. 서로 살아온 시대가 다르니 호칭부터 정리가 필요했다. 결국 “할머니-아버지-아들” 식으로 부르기로 했다. 나도 관찰자 겸 기록자로 참여했다.


먼저 1세대(할머니)와 2세대(아들)의 대화가 시작됐다. 아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인물로, 20대 때 일본 국적을 취득해 지금은 법적으로 일본인이다. 그는 어머니인 할머니에게 미안함이 많다고 했다. “어머니, 저는 결국 귀화해서 김 씨 성을 버렸잖아요. 그때 많이 속상하셨죠?”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다. 난 네가 힘들까 봐 그랬던 건데, 이제는 이해한다.” 그러나 당시엔 모자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아들이 취업과 혼인을 앞두고 귀화를 결정했을 때, 할머니는 크게 반대하며 “조상의 성과 이름을 버리면 못쓴다”라고 울었다고 한다. 아들은 “결국 제 뜻대로 했지만, 많이 죄송했어요”라고 털어놓았다. 둘은 세월이 지난 지금 솔직한 심경을 주고받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세대 간 가치관 차이로 겪었던 상처들이 이제야 조금씩 치유되는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2세대(아버지)와 3세대(아들)의 대화로 넘어갔다. 3세대 청년은 아버지뻘인 2세대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아버지 세대는 어떤 고민이 있으셨어요?” 그는 직접적인 혈연은 아니지만 마치 진짜 아버지 대하듯 물었다. 2세대는 정체성 혼란과 부모 세대와의 마찰을 주로 이야기했다. “우리는 일본서 태어나 일본 학교 다니면서도 집에 오면 부모님이 조선인임을 잊지 말라 하셨지. 솔직히 힘들었어. 밖에선 일본인이고 싶고, 집에선 한국 사람 돼야 하고….” 그는 스스로를 “끼인 세대”라고 표현했다. 1세대처럼 조선인이란 확고한 뿌리도, 3세대처럼 자유로운 마인드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정체성 혼란으로 방황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단다. 실제로 2세대 중에는 1970~80년대 인권운동가나 예술가로 활약하며 자신의 뿌리 찾기에 나선 이들이 있다. 반면 다수는 조용히 일본 사회에 섞여 들어가 “보통의 일본인”처럼 살길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결국 일본 회사 다니고 일본 이름 쓰고 살았으니, 내 정체성이 뭔지 모르겠더군.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3세대 청년이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도 사실 비슷해요.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가끔 나도 한국계였지, 생각나요.” 다만 그의 세대는 부모나 조부모 세대처럼 고민을 깊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희 친구들은 국적이 한국이든 일본이든 크게 개의치 않아요. 그냥 형편 따라 정하고… 서로 그런 얘기도 잘 안 해요.” 그는 친구들 모임에서 민족이나 역사 이야기는 거의 금기라고 했다. 모두가 일본 사회에 동화되어 살기에 그런 주제를 굳이 꺼내지 않는 것이다. 2세대는 그 말을 듣고 놀랐다. “그래? 우린 젊었을 때 친구들끼리 맨날 그 얘기였는데… 누구는 민단, 누구는 총련, 누구는 귀화파… 토론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말이야.” 3세대는 웃으며 “요즘은 정치 얘기는 다들 기피해요. 그냥 축구나 드라마 얘기하죠”라고 답했다. 세대 간 인식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1세대와 3세대가 대화를 나눴다. 할머니는 손주뻘 청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너희는… 우리 같은 할머니들 이해가 되니?” 청년은 머쓱해하며 솔직히 말했다. “완전히 이해는 못해요. 근데 존경해요. 저희는 누릴 거 다 누리고 편하게 컸으니까… 할머니 세대의 희생이 있어서 가능한 거잖아요.” 이 대답에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고 고맙구나… 너희라도 그렇게 알아주니 다행이지.” 그녀는 청년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나머지 2세대 아버지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 저희도 알아요. 우리가 누렸던 것들, 다 어머니 세대가 고생해서 이룬 거라는 거.” 그는 할머니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렸다. 셋은 말없이 손을 맞잡았다.


나는 이 세대 간 만남을 지켜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각 세대마다 환경은 다르고 생각은 다르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할머니로 대표되는 1세대의 투쟁과 희생, 2세대의 갈등과 적응, 3세대의 자유와 혼란—이 모든 것이 모여 재일동포 공동체의 역사를 이룬다. 그들은 비록 세대별로 경험은 다르지만, 한 가족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이날의 대화는 세 사람에게도 큰 위로와 깨달음을 준 듯했다. 나중에 들으니, 이 만남 이후로도 그들은 가끔 모여 밥도 먹고 고민을 나눈다고 했다. 역사의 바통은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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