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밤 – 변화의 바람
열여섯 번째 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변화하는 일본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최근 뉴스를 보며 여러 감상을 하는 듯했다. “요새는 외국사람도 엄청 늘었다지? 우리 때만 해도 조선인, 중국인 몇 있었을 뿐인데.” 실제로 현대 일본은 노동력 부족 등으로 다양한 외국인들이 유입되고 있다. 베트남, 필리핀, 브라질계 등 많은 이민자들이 이웃으로 살고 있다. “이젠 우리 조선인만 특이한 존재가 아니야. 모두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 온 거지.” 할머니의 말처럼, 일본도 점차 다문화 공생을 모색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변화는 법과 제도의 진전이다. 2016년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헤이트스피치(증오발언) 해소법이 제정되었다. 이는 혐한단체 등이 벌이는 노골적인 차별 발언을 억제하려는 취지였다. 비록 처벌 규정은 없어 한계가 있지만,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을 나쁘다고 선언한 의의는 크다. 할머니는 “드디어 일본 정부도 움직이는구먼” 하고 평했다. 또한 몇몇 도시에서는 외국인 주민참정권(지방선거 투표권)을 검토하거나, 다문화 공존 조례를 시행 중이다. “우리 동네 구청에도 한국어 중국어 안내문 붙고, 통역상담도 해준다오. 예전엔 상상도 못 할 일이야.” 그녀는 놀라워했다.
물론 여전히 극우 세력의 반발과 사회 저변의 편견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은 분명했다. 젊은 일본인 세대는 글로벌한 감각이 있고, 학교에서 인권 교육도 받는다. 나 역시 거리에서 혐오시위를 목격한 적이 있는데, 더 많은 일본인 청년들이 피켓을 들고 맞불집회를 하는 모습에 감명받은 기억이 있다. 할머니는 그 얘기를 듣더니 흐뭇해하셨다. “그래, 우릴 위해 목소리 내주는 일본 젊은이들 보면 고맙지. 우리가 늙어서 못 싸우니 이제 그들이 대신 나서는구먼.”
또 한 가지, 한일 간의 관계 개선도 재일동포들에게는 중요한 변화였다. 과거에는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의 냉랭한 분위기가 동포들에게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최근 K-POP, 드라마 등 문화 교류의 힘으로 양국 국민 간 정서는 많이 가까워졌다. “우리 손녀가 아까 말한 BTS 콘서트 간다고 밤새 줄 서고 그러대. 옛날엔 한국사람 모이라면 경찰이 해산시켰는데, 이젠 일본 아가씨들이 한국 가수 보러 줄 서는 세상이니… 참 다르지.” 할머니는 웃었다. 한편으로는 2018년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나 무역 분쟁 등으로 잠시 냉각된 적도 있지만, 민간 차원 교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재일동포들은 중간에서 架け橋(가교)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우리가 둘 다 겪어봤으니, 서로 싸우지 말라고 중재도 하고….” 할머니는 젊은 시절 한일 친선모임에서 통역을 도왔던 일을 떠올렸다.
이렇듯 일본 사회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과거에 비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이를 보며 안도하는 눈치였다. “이제 내가 눈 감아도 우리 손주들은 나만큼 서럽게 살진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좀 놓여.” 그녀는 잔잔히 미소 지었다. 물론 완벽한 평등과 공존까지는 갈 길이 멀 수 있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은 이미 불기 시작했고, 누구도 쉽게 돌려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느꼈다. 거리에서 한국어, 중국어 등이 흔히 들리고, 다문화 행사도 종종 열린다. 한국 요리점은 젊은 층 사이에 인기고, 한류스타 광고가 지하철을 장식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과거 재일조선인 1세대들이 상상도 못 했을지 모른다. 역사는 더디지만 분명히 진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밑바탕에는,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삶을 일구고 권리를 주장해 온 재일동포들의 공헌이 스며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