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밤 – 새로운 세대의 고민
열네 번째 밤에는, 할머니의 손자뻘 되는 젊은 재일조선인 한 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할머니가 “우리 손주 같은 애”라며 종종 돌봐준다는 20대 청년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3세대 조선적 동포였다. 일본 이름과 한국 이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일본 이름을 사용한다고했다.
“한국말은 거의 못해요. 할머니랑 가끔 몇 마디 하는 정도?”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그의 부모는 한 명은 일본에 귀화하고, 한 명은 한국 국적을 취득한 특이한 조합이라고 했다. 정작 본인은 아직 국적이 조선적(무국적) 상태로 남아 있었다. “부모님이 너는 그냥 조선적으로 있어보라고 해서… 근데 솔직히 불편하긴 해요. 여행 갈 때도 재입국허가받아야 하고.” 그는 털털하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실제로 조선적 신분은 일본 여권이 없어서 해외여행 시 불편함이 많다. (남북한 어느 쪽에서도 여권 발급을 받지 못하니 일본 당국의 허가서로만 출국 가능하다.)
나는 그에게 왜 아직 조선적으로 남아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음… 저도 곧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한국 국적을 취득하든지, 아니면 일본으로 귀화하든지. 그냥 이렇게 애매하게 있는 건 애매하잖아요.”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앞둔 상태였다. 회사에 들어가려면 신분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면접 볼 때 국적 쓰는 칸에 ‘무국적(조선)’이라고 적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요. 차별은 없다지만, 속으론 꺼릴 수도 있고….” 역시 현실적인 문제였다.
할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넌 어떻게 하고 싶으냐? 일본 사람이 되고 싶으냐, 한국 사람으로 살고 싶으냐?” 청년은 대답했다. “솔직히 전 그냥 일본인이에요. 문화나 생활은 완전 일본이죠. 근데 또 피는 한국… 아니, 조선족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렇잖아요. 그러니 일본국적을 따도 한국계 일본인일 거고, 한국국적을 가져도 일본에서 산 한국인일 테고… 뭐가 됐든 반쪽짜리 느낌은 남을 것 같아요.” 그의 솔직한 심정을 들으며 나는 가슴이 찡했다. 정체성의 혼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젊은이들이 흔히 겪는 내적 갈등일 것이다.
“그래도 하나 정해야지. 두 발 걸치고 살 순 없어.” 할머니가 부드럽게 타일렀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알아요. 아마 일본 국적으로 바꾸게 될 거같아요. 한국엔 연고도 없고, 여기서 평생 살 건데 일본인이 되는 게 편하겠죠.” 이미 마음의 결정을 반쯤 내린 듯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할머니 눈치를 살폈다. “할머니 속상하실까 봐….”
할머니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다. 난 이해한다. 시대가 바뀌었어. 이 할미는 끝까지 조선적 일지 몰라도, 너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그녀는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요새는 매년 몇만 명씩 귀화한다지. 다들 자기 선택인 거야. 나는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 청년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요? 고맙습니다, 할머니!” 그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이 세대를 보며 느꼈다. 재일동포 젊은 세대에겐 국적이나 민족 정체성이 유연한 문제가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1세대처럼 운명적으로 “조선사람”이어야 한다는 부담을 지지 않는다. 필요하면 일본인이 되기도 하고, 한국인으로서 권리를 누리기도 한다. 정체성은 이제 개인의 선택이자 다중적인 것일 수 있다는 점을 그들은 보여준다. 물론 완전한 일본인도, 완전한 한국인도 아닌 어중간함에서 오는 고민은 남지만, 이들을 둘러싼 사회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포용적이다.
할머네는 청년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건넸다. “국적이 뭐든 간에, 니 할머니 세대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잊지 말아 줘. 가끔이라도 생각해 주면 고맙겠다.” 청년은 진지하게 “예” 하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 그는 종종 할머니를 찾아와 말벗이 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세대는 옛 세대를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그 역사 위에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 또한 마음이 뭉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