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밤 – 우정과 연대
열다섯 번째 밤에는, 할머니와 일본인 친구 한 분이 함께 자리해 주셨다. 그는 근처에 사는 80대 일본 할아버지로, 할머니와 50년 지기 이웃사촌이라고 했다. “내가 일본에 남아서 잘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친구를 사귄 거야” 할머니는 웃으며 그를 소개했다. 두 분은 젊었을 때 같은 공장에서 일했고, 그 인연으로 가족처럼 지내왔다고 한다.
“할머니가 우리 애 돌봐주고, 우린 김치 얻어먹고… 하하” 일본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옛날부터 할머니를 “김상” (김 씨 상)이라 불렀고, 할머니는 그를 “야마다 상”이라 불렀다. “사실 처음엔 나라가 다르다고 거리감이 있었지. 근데 이 양반 성실하고 또 음식 솜씨가 좋아! 같이 밥 먹다 보니정들더라고.” 야마다 할아버지가 회상했다. 두 분은 한때 지역 주민 모임에서 소소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어떤 일본인 이웃이 “조선인은 시끄러워”라는 편견 어린 말을 하자, 야마다 할아버지가 발끈해 대신 항의해 줬다는 일화도 들려주었다. “이 양반 덕에 내가 큰소리치며 산다니까” 할머니가 고마운 눈길을 보냈다.
세월이 지나 야마다 할아버지의 손자세대는 자연스럽게 김 할머니를 동네 할머니로 여길 정도로 가까워졌다. “우리 손녀가 요즘 케이팝 좋아해서 한국말 배운다오. 김할머니 보고 한국 할머니 노래 가르쳐달래. 허허” 그는 웃으며 전했다. 할머니도 “맞아, 며칠 전에 손녀가 와서 아리랑 가르쳐달라고 해서 내가 불러줬지. 얼마나 예쁘고 귀엽던지”라고 했다. 이렇듯 이웃 간의 소소한 우정과 교류는, 민족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게 해 주었다.
나는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본인 사회의 변화에 대해 물어보았다. “전후 바로 그때랑 비교하면, 일본 사람들 마음도 많이 달라졌지요?” 야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젊을 땐 솔직히 재일조선인에 대한 편견들이 있었어. 괜히 무섭다거나 더럽다거나 하는… 근데 함께 살아보니 똑같은 사람이더라고.” 그는 한때 가졌던 잘못된 인식을 부끄러워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우리보다 나아. 해외여행도 많이 다니고, 한국 문화도 좋아하고… 국제결혼도 드물지 않고.”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일본의대중문화와 사회는 국제화되며, 민족차별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었다고 한다. 물론 혐한시위 같은 나쁜 움직임도 있지만, 주변의 많은 일본인들은 그런 극단주의를 부끄러워하고 반대한다. “우리 동네에서도 몇 년 전에 우익들이 조선학교 앞에서 욕설시위를 하는데, 일본 주민들이 나서서 그 사람들 막았어요. 다 같이 ‘돌아가라!’ 하면서 말이오.” 야마다 할아버지가 전해준 일화다. 나는 놀라움과 함께 감동을 느꼈다. 이웃으로서 쌓아온 신뢰와 연대가 있었기에,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이 재일동포를 지켜준 것이다.
할머니는 말했다. “내 젊을 적엔 이런 날이 올 거라 상상도 못 했지. 일본 친구가 이렇게 내 편이 되어주고, 또 함께 우리 문화를 즐기고… 참 좋은 세상 되었어.” 그러나 그녀는 이어 조용히 덧붙였다. “아직 갈 길은 멀지. 그래도 우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야.”
그날 나는 민족을 초월한 우정과 연대의 힘을 똑똑히 보았다. 정치적 갈등이나 역사적 앙금이 남아 있어도, 옆집에 사는 한 사람과 한 사람 사이의 마음은 통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풀뿌리 교류가 편견을 허물고 진정한 다문화를 이룩하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마다 할아버지와 김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