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눈물
여느 날처럼 알람 소리에 잠을 깬다. 기지개를 쭉 켜며 ‘어릴 적 매일같이 이렇게 습관을 들였더라면 5센티는 더 자랐으려나?’ 쓸데없는 생각을 시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자 봄바람이 살랑살랑 수줍게 집 안으로 들어온다.
오늘은 친구가 선물해 준 노란 원피스를 입기로 한다. 노란 바탕에 꽃무늬가 들어가 있다 했다. 파란색이었나? 보라색이었나? 아마 파란 꽃이었을 거다. 예전엔 나도 꽤나 기억력이 좋았다. 어느 매장에서 어떤 색깔의 옷을 얼마의 가격으로 구매했는지까지 일일이 다 기억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20대의 기억력을 따라가지 못하겠다.
청바지를 입을 때에도 사람들에게 종종 색깔을 물어보곤 했는데, 이제는 묻지 않기로 한다. 진청색이면 어떻고 연청색이면 어떠랴. 어차피 청바지가 청바지인 것을….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일들은 애써 머릿속에 꾸역꾸역 밀어 넣지 않기로 한다.
집 앞을 나오니 태양도 기지개를 켜며 바닥을 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말갛게 웃고 있는 햇살 사이로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나기였다.
‘오늘은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말이 없었는데, 이상하다! 여우가 시집을 가나?’ 생각하는 사이 비가 그쳤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또다시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졌다. 하늘이 변덕을 부리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오늘은 여우가 여러 번 시집을 갈 모양이다.
빗방울에 섞인 흙 내음이 좋다. 이슬을 머금은 이름 모를 풀꽃들의 향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많고 많은 동물 중에 하필이면 왜 여우와 호랑이만 시집․장가를 가는 걸까? 그럼 여우가 호랑이한테 시집을 가는 건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궁금증이 둥실 떠올랐다. 검색해 보니 역시나 민간에서 전해오는 아주 재미있는 설화가 있었다.
꾀가 많은 여우는 숲 속의 왕 호랑이와 결혼하면 호랑이의 힘을 빌려 왕 노릇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호랑이를 꾀어 햇살 좋은 날,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여우를 짝사랑했던 구름이 있었는데, 호랑이에게 시집가는 여우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구름이 흘린 눈물은 비가 되었고, 구름이 애써 웃으며 여우의 행복을 빌어주자 마침내 비가 그치고 화창한 날씨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민간에 전해 내려오면서 화창한 날, 잠깐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문득 인생이 여우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뜨나 싶으면 갑작스레 뜻하지 않는 힘든 일이 소나기처럼 닥쳐오기도 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늪인가 싶다가도 어느새 반짝 해가 뜨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비가 그친 뒤 환하게 갠 하늘 사이로 무지개가 뜬단다. 무지개는 어떤 모양일까? 옆에 있던 언니에게 말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참 불쌍하다. 무지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랬더니
“우리가 볼 수 없는 게 비단 무지개뿐이겠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늘따라 언니의 목소리가 서글프다.
구름은 어떻게 생겼을까? 뭉게구름과 먹구름은 또 어떻게 다른 걸까.
‘달 밝은 밤에’라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초승달의 모양과 보름달의 모양은 알고 있지만,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기까지의 달이 차오르는 과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는 도대체 어떤 빛깔을 띠고 있기에 에메랄드라는 그렇게도 예쁜 이름이 붙여졌을까.
하루만, 단 하루만이라도 시각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으로 살아보고 싶다.
만약 그런 시간이 내게도 주어진다면 제일 먼저 거울 속 내 얼굴을 들여다볼 것이다. 사람들이 까맣다고 하는 내 피부는 어느 정도로 검은지, 눈 코 입은 적당한 크기로 제자리에 잘 자리하고 있는지 거울 속 내 모습이 궁금하다.
그다음은 북 카페로 가 내 사랑 따바라(따듯한 바닐라 라떼) 한 잔을 주문한 뒤, 색색의 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까슬까슬한 종이 냄새를 맡으면서 한 장 한 장 천천히 책을 읽을 것이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두 발자전거를 타고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 여러 종류의 꽃들이 그림처럼 펼쳐진 드넓은 벌판과 노을 지는 하늘빛 그리고 밝은 달과 쏟아지는 별들의 황홀한 풍경을 감상할 것이다.
‘눈으로만 보세요.’, ‘만지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는 상점들의 갖가지 장식품과 번쩍이는 액세서리들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구경해 볼 거다.
누구의 도움 없이 영화관에 혼자 들어가 팝콘 한 통을 끌어안고 아작아작 씹으며 액션 영화 한 편을 감상하고, 인형 뽑기 가게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니미 인형들을 잔뜩 뽑아 올 것이다.
그리고 VR을 통한 심장 떨리는 가상현실 체험도 꼭 한번 해보고 싶고, 사진과 글을 예쁘게 섞어 만들어 소개하는 맛집/여행 블로그 운영도 해보고 싶다.
지인들과 식당에 가서 내가 여태껏 받기만 했던 고마운 사람들에게 수저를 놓아주고 물 한잔을 떠다 주며 고기를 노릇노릇 구워 앞접시에 놓아줄 것이다.
나는 공간 감각이 어느 정도일까. 운전대를 잡고 주차도 한번 해보고 싶다.
징그럽기 짝이 없다는 바 선생(바퀴벌레)과 쥐 사장, 지네 님까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_^
비장애인들 사이에 섞여 나도 일반인인 척 생활하다가도 어느 날은 버거움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짓눌러올 때가 있다.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가끔 찾아온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죽을힘을 다해 애를 써 봐도, 어쩔 수 없는 장애인이구나.’ 생각이 들며 자존감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그런 날이 있다.
‘장애를 극복했다.’라는 말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나는 여기 그대로인데 어떻게 무슨 수로 극복을 한단 말인가. 그냥 괜찮은 척, 괜찮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언젠가 한 번은 물어보고 싶다. 왜 하필 나를 택한 거냐고. 다른 사람들에겐 두 개나 있는 눈을 나에겐 하나도 모자라 두 개씩이나 가져간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꼭 나여야만 했는지 정말 그래야만 했었는지, 내가 뭘 그리도 큰 잘못을 했기에 그다지도 가혹한 벌을 내렸는지, 휘청이는 나를 보며 춤이라도 추고 계시는지, 세상 모든 신에게 울고불고 매달려 소리치며 떼를 쓰고 따져 묻고 싶다.
때때로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단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괜찮겠지, 괜찮다. 괜찮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마음속으로 백번쯤 생각하다 보면 다시금 괜찮아지겠지.
괜찮지 않은 마음에게 또 다른 마음이 다가와 말한다.
‘괜찮아 여태껏 잘해 왔잖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처럼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도 잘해 나가면 돼’하며 살며시 안아 준다.
그래서 괜찮지 않은 마음은 또 다른 마음이 내민 손을 잡으며 친구의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내일부터는 괜찮은 마음으로 살아보기 위해 훌훌 털고 씩씩하게 일어나 다시 한번 미소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