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병아리 Feb 12. 2023

보석 같은 인연들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제 수업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동안 버텨오던 체력도 정신력도 덩달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과한 욕심인 줄 알면서도 갑자기 쏟아진 기회를 놓치기 싫어 고집을 부렸고, 생각만큼 아니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게으르기 짝이 없고, 잠 많기로 유명한 내가 3개월을 하루에 3~4시간을 자고 생활을 했으니 살면서 이렇게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은 없었고 앞으로도 이 만큼 바쁜 나날은 다시없을 것 같다. 


  처음 점자 교육 출강을 요청받았을 당시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앞서는 욕심만큼 두 가지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고 싶었다. 기회는 결코 누구에게나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므로….


  ‘조금 덜 자고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 강의를 나가기로 했다.

  기왕이면 잘하고 싶었다, 소개해준 지인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그래도 12년이 넘게 해 온 건데 어느 정도는 하겠지?’ 하는 조금의 자신감과 교만함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30년 국어교사에 교감겸임까지 하신 선생님, 아버지와 연세가 같으신 교수님, 건설회사까지 다니시다 중도 실명하신 어르신, 시각장애 자녀를 둔 학부모님 등등. 교육생들을 만날수록 그런 마음은 두려움과 주눅으로 점점 바뀌어 갔다.


  가는 곳곳마다 직원들과 나이 드신 교육생들까지 모두가 ‘선생님, 선생님’ 하시며 너무도 깍듯하게 대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과연 이런 대우를 받을 만큼 능력이나 자질 따위가 있는 사람인가 하는 부끄러운 맘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고, 더 열심히 하자, 정말 잘하자 수없이 채찍질을 하며 준비를 했다.

  어떤 일을 하건 그 이전에 우선 상대방과의 교감이 중요하다는 것, 강사로 간 게 부끄러울 만큼 하루하루 갈수록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걸 배우고 온 것 같아 감사하다. 


  오늘은 소낙눈이 펑펑 내리는 천안에 다녀왔다. 천안도 이제 마지막 한 번밖에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지난 일들이 반짝이며 머릿속을 채운다.

  “선생님, 멀리 있는 길 오시느라 식사도 못 하셨죠? 점심때 귤이 나왔는데 선생님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이건 제가 만든 쿠킨데 모양은 이상하지만 그래도 한 번 드셔 보세요.”

  지나가는 말로 장이 안 좋고 감기에 자주 걸린다는 말을 했더니 그걸 기억하시고 효과가 좀 있을 거라시며 상황버섯 말린 가루도 갖다 주신 교육생도 계셨다.

  모두 마음 씀씀이들이 너무 따듯하고, 감사하다.


  점자 문제를 읽고 있으면 이제 제법 친해져

  “선생님은 점자교정사에 치아교정도 하시고, 근데 발음이 새요.” 하면서 흉내를 내신다.

  “자꾸 놀리지 마세요~~”라고 하면,

  “괜찮아요, 그래도 목소리는 98점이에요.” 또 한 번 나를 놀리신다. 


  내일은 분당으로 여섯 살 우리 환이를 만나러 가는 날! 이제 내 이름도 알고 점자 교육하는 시간이란 것도 안다.

  첫 수업 때 자폐 아동이란 걸 모르고 들어갔다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머리가 하얘져서 나오던 게 기억난다.


  처음 만난 날, “야~ 저리 가~” 하며 밀어내기만 하던 환이가 이제는

  “안녕하세요~” 하고 들어와 내 무릎에 앉아 같이 점자 노래도 듣고 촉각도서와 도형을 만져 보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며 꼭 한 번 나를 안아주고 간다.

  요즘은 수업하다가도 갑자기 “사랑해!” 하며 안아주는 날도 많아졌다. 비록 하려 했던 점자 교육은 못 했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 뿌듯하고, 감사하다. 


  마음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시는 찬이 어머님. 조카와 같은 나이의 세 살 찬이, 한창 뛰어놀고, 말을 배울 나이, 하지만 시각장애에 심한 자폐가 있다 한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꼭 품에 안아본 것처럼 찬이에게 자꾸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늘 어머님들 수업을 들어가면

  “환이는 잘 지내고 있나요?”, “찬이는 요즘 좀 어떤가요?” 아이들의 안부 인사로 시작을 하게 된다. 


  “선생님, 우리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어머님들의 떨리는 목소리 앞에 나도 아픈 가슴을 꾹꾹 누르며 들어 드리는 것밖에 직접적으로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자폐 아동 관련 도서를 세 권 정도 보고,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조언을 얻어 이론적으로만 알려드릴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웠다.

  그런데도 “선생님 저희 내년에도 수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지각도 안 하고 더 열심히 할게요. 네?”라고 하신다.

  열정이 넘치고 정도 많으신 분 들 이어서 함께 있으면 나까지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흔히 궁금해하는 것들이지만 평택에선 특히나 재미있는 질문들을 많이 받았다.

  “선생님 옷이 너무 잘 어울려요, 평소에 옷은 누구랑 사러 가세요? 그럼 색깔별로 점자를 붙여 놓나요?”

  “남자친구는 있으세요? 어떤 남자 좋아하세요? 뉴스 진행하는 시각장애인 앵커랑도 혹시 아는 사이세요? 그분 참 잘 생기고 괜찮던데 만나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화장은 누가 해 주세요? 아이라인은 어떻게 그리세요?” 등등.


  “옷은 친구들이랑 고르고요, 색은 거의 외우고 있어요.”

  “남자친구는 없고 그냥 착한 남자 좋아합니다, 뉴스 진행하는 앵커와는 1년에 밥 한두 번 먹는 사이 형 동생 하는 사이입니다.”

  “화장은 제가 손끝으로 만져서 하고요, 아이라인은…. 사실 비밀인데…. 문신한 거예요~”라고 했더니 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오며 강의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반마다 각각의 특색이 있고 즐겁게 열심히들 해 주셔서 하루하루가 기다려졌고, 피곤함에 지쳐 허우적대다가도 수업만 들어가면 신기하게도 힘이 절로 솟아났다.

  힘들긴 했지만 세 곳 다 출강을 하기로 했던 것이 너무 잘한 결정이었다.


  부족한 나를 믿고 소개를 해준 천안의 김 선생님, 평택의 백 선생님, 서울의 정 선생님,

  담당 선생님이자 보조 선생님으로 도움을 주신 천안의 안 선생님, 평택의 임 선생님, 분당의 심 선생님

  ‘점자정보단말기’를 빌려주고 매일매일의 나의 몸과 마음을 걱정해 준, 앞으로 누구보다 멋진 특수교사가 될 사랑하는 우리 이 선생,

  점자 노래와 교재를 보내주며, 자폐 아동에 대해 오랜 시간 상담과 조언을 해준, 나의 마음의 지주이자 버팀목이며 현(現) 특수교사로 재직 중인 마이 시스터 김 선생님,

  서류엔 젬병인 나를 위해 이번에도 옆에서 애써주고 힘들 때마다 손잡아주며, 용기와 힐링의 문자를 마구 보내준 나의 20년 지기 우리서 선생,

  언제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늘 친절히 알려주는 나의 영원한 스승님 하 선생님과 콩과 팥을 섞어 메주를 만든대도 믿을 수 있는 여자 정 선생님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며 소중한 시간과 보석 같은 인연들을 가슴 한편에 꼭꼭 눌러 새겨 본다. 

이전 03화 여우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