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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병아리 Mar 19. 2023

연애도 계약이다

시각장애인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가질까?

  언젠가 ‘어장관리’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등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적잖게 놀란 적이 있다.

  실제로 사귀지는 않지만 마치 사귈 것처럼 친한척하면서 자신의 주변 이성들을 동시에 관리하는 태도, 행태를 의미하는 신종 연애용어라 명시되어 있다.

  썸은 서로 호감은 갖고 있지만 정식으로 교제를 하고 있지는 않은 남녀 간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이렇듯   어장관리나 썸이란 말이 국어사전에도 등장할 만큼 놀라운 시대가 되었다.


  나는 사랑이라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아니었단다.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 상대방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사귀는 사이도 친구 사이도 아닌 그 어디쯤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다 한쪽이 우린 그냥 썸이었다. 라며 일방적으로 관계를 일축해 버리면 남아 있는 사람만 '쿨하지 못한 사람'으로 전락해 버린다. 어떠한 예고도, 유예기간도 없이 일방적인 통보를 내던지며 잘못한 사람은 상대방인데도 말이다.


  썸을 타는 단계는 계약에 비유하자면 계약 교섭 단계라고 부를 수 있다.

  작가는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썸을 타다 끝내도 책임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연애에도 계약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며 책임과 예의가 필요하다.


  그런 때가 있었다. 이 사람이 나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또한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앞뒤 잴 것 없이 순간의 넘쳐흐르는 감정 때문에 나도 모르게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런 때가….


  “누가 봐도 그 사람은 아니고 너흰 맞지 않아.”라며 주위에서 하나같이 다들 말렸지만 그때 당시엔 내 사랑을 왜 존중해 주지 않냐고 인정해 주지 않냐고 섭섭한 감정만 울컥울컥 토로했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아무 조언도, 아무 질책도 들리지 않는다. 겪어봐야지만 알게 된다.

  맨발로 가시밭길이든 얼음동굴이든 불구덩이 속이든 들어가 죽을힘을 다해 빠져나온 후에야, 심장이 내동댕이쳐지는 찌르는 고통을 경험해 본 후에야 ‘이건 아니었구나.’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말과 행동이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는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반대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는 것을.


  20대에는 그랬다. 첫눈에 스파크가 일고 손끝만 닿아도 심장이 갈비뼈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뛰는 것만이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느낀다. 안 보면 미칠 것 같은 것만이 사랑이 아님을, 설렘이 있어야만이 사랑이 아님을, 사랑에도 수만 가지의 종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볼수록 정이 들고 서서히 번져가듯 물드는 사랑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인생은 내 마음처럼 짜인 계획표대로 그렇게 호락호락 흘러가 주지 않는다.

  누구든 영원한 사랑을 바라지만 특히 사랑이란 게 생각대로 되지가 않는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공지영 작가는 딸에게 헤어질 때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 한다.


  헤어짐을 예의 바르고 아쉽게 만들고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나며 그 사람을 알았던 것이 내 인생에 행운이었다고 생각될 그런 사람을.

  그래서 사랑은 시작도 물론 중요하지만 끝맺음의 과정도 중요하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시각장애인들은 외모를 볼 수 없는데 그럼 어떤 면을 위주로 이성을 선택하냐고.

  물론 여자든 남자든 키 크고 늘씬늘씬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처음 호감도 상승률 면에서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상대방의 목소리와 말투에 중점을 둔다.

  늘 짜증이 얼굴에 묻어 있고 찡그림이 일상화되어 있는 사람은 절대 예쁘고 다정한 말투를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통화만 몇 번 해봐도 알지 않는가. 이 사람이 얼마나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는지 그리고 성격이 급한 사람인지, 혹은 차분한 사람인지….

  그래서 나는 행동과 말속에 따듯함이 묻어 나오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출처: 교보문고)


  쉽지만 결코 가볍지 않으며 재미있으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책!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연애는 왜 계약이 되어야 하는가, 썸 타다 헤어져도 책임은 있다, 상대의 현재 연애 상태 확인하기, 등기부등본 열람, 이중 계약의 위험, 거절하는데도 ‘열 번 찍으면’ 범죄다 등 연애를 법률계약에 빗대어 드라마와 영화 속 장면들을 예시로 들어가며 한 줄 한 줄 마음에 쏙쏙 들어오도록 재미에 재치를 더해 여러 색채의 감성으로 써내러 갔다.


  사랑이 늘 반짝반짝 황홀한 핑크빛으로 빛나는 것만은 아니며 꽃길만 펼쳐져 있지도 않다. 매일을 무지개미끄럼틀 위를 뛰어다니며, 구름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만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희경작가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 말한다.


  물론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그 또한 얼마나 밋밋한 삶이 되겠는가.

  사랑하자. 사랑할 수 있을 때, 열정과 감정이 있을 때!

  사랑은 대단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사랑의 씨앗을 깨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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