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키는 내면의 자아와 손 맞잡기

내 안의 열등감은 언제부터였을까?

by 노을책갈피

나의 열등감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집안의 장녀인 나는 어려서부터 무언의 책임감을 느껴왔다.

맞벌이로 힘든 직장 생활을 하셨던 부모님의 고생을 알기에 어린 나이에 고사리 손으로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마다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내 나이 8~9살쯤이었을까. 그 나이에 칭찬을 바라고 하지 않은 행동이라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놀란 눈치로 칭찬을 해주셨던 것 같기는 한데, 표현에 인색하셨던 어머니는 그 이후론 당연한 일로 느끼신 듯했다.


그러면서 우리 남매는 점차 성장했고,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남동생은 중학생 때 배드민턴으로 부산시 대표가 된다.

운동하는 동생을 더 챙기는 게 당연시되는 일상이었고, 특별한 재주가 없었던 나는 공부에만 매진하게 된다.

남몰래 열등감의 싹을 틔우고 있었는데, 명절과 방학 때만 되면 특히 열등감의 꽃이 활짝 피게 된다.

남아선호사상이 잔재한 데다가 유독 애교도 많고, 귀여웠던 남동생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물론 외삼촌네를 비롯하여 외가 친척들의 귀여움과 관심을 독차지했다.

친가 친척들의 반응은 더했다. 큰 아버지는 아들 둘만 키워오셨고, 친정아빠보다 더 무뚝뚝하셔서 오랜만의 방문에도 남동생은 그렇게 반기면서 나는 마치 없는 존재인 것처럼 반기지도,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으셨다. 그나마 말을 걸어주시던 큰어머니와 이혼을 하신 이후에는 상황이 더 심해졌고, 얌전히 차례만 지내다 오는 게 일상이었다.

내가 보기엔 나랑 비교했을 때 특출 날 것 없는 남동생이 사랑을 독차지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내가 바라는 이상은 이번 생엔 무리일까? 내가 남자로 태어나야 했을까?'

그러면서 '우리 동생, 명절 쇠고 집으로 가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가 반드시 괴롭혀 줄 거야'라고 얼마나 속으로 외쳤는지 모른다.

그때부터였을까. 나의 존재가 이유도 없이 싫어졌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존재일까? 그나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면 부모님 만큼은 나를 사랑으로 바라봐주시겠지?'라고 생각하며 주어진 역할에 매사 충실했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열등감은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다고 언급한다.

이 한 문장이 유독 다가오는 이유가 어렸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면서 점점 나의 마음을 갉아먹기 시작하더니, 어릴 때부터 형성된 열등감으로 가득 찬 그때의 감정과 기억이 한 번씩은 내 인생 전체를 놓고 휘젓다시피 할 때가 있다.

이와 덧붙여 알프레드 아들러는 "풍요 속에서도 결핍을 느끼게 하고, 약점을 보완하려는 의지를 만든다. 더 경쟁력 있는 개체로 거듭나게 만든다."라고 했다.

나는 지독한 열등감으로 인해 끊임없이 성장했어야 했다.

자기 비하로 가득 찬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자존감은 너무 낮지만 자존심만큼은 강한 내가, 자존감이 강한 나로 보이기 위해.

지금도 애쓰고 있음은 분명하다. 더불어 열등감과 싸우고 있음도 분명하다.

다만, 과거에 비하면 마음이 많이 편해졌고, 많이 내려놓은 상태다.


나는 현재 남부러울 것 없이 자상한 남편과 든든한 두 아들, 그런 우리 가족을 늘 사랑으로 바라봐주시는 양가 부모님들이 계신다. 한번씩은 자기 위로와 내적 응원 겸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진 풍요 속에 살아서 열등감이란 감정이 내 안에 깊숙이 들어온 것일까? 그렇다면 한번 맞서 싸워보자'라고 내 마음을 다져본다.

앞으로 내 안에 깊숙이 서려있는 열등감이란 감정을 긍정적으로 마주하고, 열등감을 유발하는 나의 이상이나 욕망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덧붙여 나만의 무언가를 위해 어떤 노력이 좀 더 필요한지도 구체적으로 말이다.

그러면 내 삶의 방향에 대한 정답지가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