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키는 내면의 자아와 손 맞잡기

불안의 시작과 변화 과정

by 노을책갈피

나의 불안은 언제쯤 시작됐을까?

시간을 거슬러 중학교 시절로 가본다.

정확히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나는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학습부장이 되었다.

학습 부장의 역할은 매일 아침에 친구들이 자습으로 공부할 문제를 칠판에 적는 일이었다.

과목별로 문제를 내야 했고, 친구들이 하교한 후 내 역할은 시작된다.

칠판에 적는 글씨체도 신경이 쓰였고, 일단 글씨를 또박또박 적어야만 했다.

친구들이 칠판에 적힌 내 글씨를 보고 각자 공책에 그대로 적으며 공부하는 방식이었다.

"저 3번 문제에 마지막은 무슨 글자야?"라고 물어보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글씨체에 유독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나랑 친한 친구 몇몇과 남아서 자습 문제를 함께 내기도 했고, 혼자 남아서 감당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은 모든 전교생 사이에서 악명 높게 무섭기로 소문난 체육선생님이셨다.

처음 그 반에 배정됐을 때,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 반 친구들 모두가 그러한 반응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담임 선생님께서는 첫날부터 군기를 잡으셨고, 성적에 대한 자극부터 매일 숙제에 대한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는데 어떤 날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마저도 들었다.

그런 선생님 밑에 정말 막중했던 학습부장이라는 역할.

그렇게 호랑이 같던 담임 선생님은 정작 나를 예뻐해 주셨지만, 나는 항상 얼어있었다.

내성적인 아이이기도 했고, 맡겨진 임무에 있어서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랬을 테다.

더군다나 자습 시간에 공부했던 문제로 학년 별로 한 달에 한 번씩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우리 반은 항상 꼴찌 아니면 꼴찌 앞이었다.

꼴찌를 하는 날이면 그날 하루는 너무 불안했다. 성적이 떨어진 남학생들을 특히 체벌하기 일쑤였다.

나는 나름 열심히 했지만, 그동안 자습 문제를 내왔던 내 탓도 있는 것만 같았고, 학습부장이라는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든 기분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불안이 내 안에 점점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 고등학생이 되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하필 고 3 때 사춘기가 절정이었다.

성적은 내 맘처럼 오르지도 않았고, 내 안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고, 걷잡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이 성적으로는 미래가 보이지도 않았고, 막막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음에도 공부를 해야만 했다.

부모님께는 나의 이러한 상황을 자세히 얘기하지도 못했다.

모의고사를 보던 날. 비참한 성적표를 받고 집에 엉엉 울면서 들어간 기억이 있다.

엄마가 차려주신 밥은 넘어가지도 않았고, 꾸역꾸역 눈물을 삼키며 상황을 얘기했다.

"학교 다니기 너무 힘들어. 성적은 오르지도 않고.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랑 비교가 되니 더 싫어."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자퇴를 요구하기 이르렀고,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마음 아파하셨으나, 학교는 꼭 졸업하라고 회유하셨다. '만약 그때 엄마가 나를 좀 더 따뜻하게 공감해 주셨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이후 20대 때는 새로운 직장 환경과 변화에 적응해야만 했다. 몸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불안이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미된 불안감.

처음 직장 생활의 고초를 겪고 난 후, 내 몸과 마음이 서서히 적응하면서 불안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처음이라는 낯선 공간, 낯선 상황, 낯선 시간.

그 모든 것을 감내하기에는 어렸을 때의 불안을 완전히 잠재울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30대인 지금도 어느 정도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지만, 글을 쓰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중이다.

내 안에 불안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매일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

내가 엄마로서의 역할만을 고집했다면, 내 마음속 한편에 성장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결코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불안이라는 내적 감정이 나를 글쓰기로 일으켜 세운 것이다.

앞으로도 삶과 마주하는 글쓰기를 하며, 나를 돌아보고 나를 성장시키는 것에 목표를 둔다면 내 안의 불안은 점점 사그라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건 아마 그토록 열망했던 '나'와 '성장'이라는 목표를 글쓰기로 실천하고 있다는 점을 내 안에 각인시키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