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흐르는 방향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결국 진심이다. 그것은 언어보다 먼저 도달한다. 진실은 종종 흐름 속에서 왜곡되지만, 자기만의 진리를 지닌 사람은 결국 그에 상응하는 응답을 받는다. 우리가 누군가의 말보다 그 사람의 ‘태도’에 먼저 반응하듯, 존재는 지각적·정서적 파동으로 작용한다.
모든 말은 의심해야 한다. 그러나 타자의 존재를, 그리고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가능성을 잊은 것이 아니라,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그 망각의 결과로, 대립이 사라진 자리에서 감각도 윤리도, 그리고 시간도 무뎌진다.
시간은 결국 감각의 문제다. 측정은 가능하지만, 체험은 언제나 다르다. 타자를 만날 때마다 시간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 차이는 존재가 서로에게 남긴 감응의 흔적이며, 관계 속에서만 드러나는 시간의 질이다.
하지만 만약 시간의 원리를 기계가 해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시간을 이해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간에 의해 연출되는 객체가 된다. 지구를 온전히 보존하지 못하고, 같은 종끼리 싸우며,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인간이 시간의 본질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시간을 해명하기 전에, 우리는 배제된 이들을 먼저 회복시켜야 한다. 각자가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어긋난 시간에도 늦게라도 응답해야 한다. 사랑받은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 고통을 경험한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경험은 흔적을 남긴다. 시간의 리듬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과는 엇갈린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시도한다. 의식에 닿으려는 시도, 시간을 맞추려는 시도,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시도.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아직 인간임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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