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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Jul 16. 2024

4. 사실 입관식은 보고 싶지 않았어요

신랑의 취향 덕분에 던지고 깨부수고 치고 패고 찌르고 쑤시고 터지는 장면을 무수히 봤습니다.

액션, 누아르, 범죄 수사, 의학 드라마에 걸쳐 수술하거나 부검하는 장면도 덩달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인지 장례식 내내 비현실적인 느낌이 가시지 않고 그저 촬영 세트장에 내던져진 것만 같았어요.

시신은 정말 핏기 없이 시퍼럴까, 모형처럼 피부가 뻣뻣할까 가끔 궁금하긴 했어도 굳이 알고 싶진 않았는데...


어머님과 아이들은 입관식을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들을 챙기고 있겠다는 핑계로 저도 빠지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죽음이라는 녀석을 직면하기가 겁났거든요. 

하지만 작은 아주버님, 큰 형님 내외와 저희 부부는 당연하다는 듯 참관인이 되었습니다.


염을 하는 모습까지 보는 건 아니더군요. 휴-

입관을 한 뒤에 영정사진 뒤편으로 옮겨 오는 것도 아니었고요.

이렇게 배경지식이 없었다니...


작은 형님은 평온한 표정으로 철제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좁쌀처럼 노랗고 까슬한 삼베옷을 두루마기까지 겹겹이 입고 빨간 신을 신고 있었고요. 

진짜 신발이었는지 비단 버선 같은 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빨간색이 아주 생경했습니다. 


콧구멍 아래에 손가락을 대면 풉, 웃으며 일어날 것 같았어요.

장난치지 말고 일어나라고 하고 싶었는데 일어날 리가 없으니, 깨워도 일어나지 않을 게 무서워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저는 시아버지를 뵌 적이 없어요.

신랑이 부사관으로 복무하고 있을 때 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응급수술을 하는 동안 수액을 들이붓다시피 해서 입관식 때도 얼굴이 엄청나게 부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나는 너무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라 오히려 더 어색하더래요.


장례지도사님이 이제 고인을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을 테니 마지막으로 만져보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이미 몸이 차갑고 딱딱할까 봐 차마 손대지 못했어요.

그 느낌은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 같았거든요.

여전히 형님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믿고 싶지 않았던 마음입니다.

작은 아주버님 외에는 다들 쭈뼛거렸어요.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던 걸 나중에 확인했는데 큰 형님과 큰 아주버님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테죠.

다들 우느라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어머님과 애들은 함께 안 들어오길 잘했지.


다들 한바탕 울고 나서는 얼굴도 한 겹 덮어 삼베로 씌웠어요.

관에 넣기 전에 침대에서 옮기는 동안 옷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머리와 몸, 발 부분을 가로로 한 번씩 묶는데 너무 세게 조여서 아프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숨 막힘도 아픔도 느끼지 않을 형님은 홀가분하려나.


'입관'을 할 때 남자들은 장례지도사님과 함께 들고, 큰 형님과 저는 살짝 밀듯이 힘을 보탰어요.

몸에 손을 댔는데 아직 그렇게 딱딱하지는 않더라고요.

진작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천천히 굳도록 마구 주물러 줄 걸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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