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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Jul 10. 2024

2. 이 와중에 내 걱정도 하는 나

남편에게는 두 명의 누나와 다섯 명의 조카들이 있습니다.

조카 다섯 중에 이번에 사고를 당한 작은 누나네 아이가 셋입니다.


비보를 듣고 '애들 어짜노?'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그다음 든 생각은 '어머님 괜찮으실까?'였고요.

순서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한참 뒤에야 작은 형님네 부부가 걱정되었고,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서는 큰 형님도 염려스러웠습니다. 외아들이 부인을 잃었으니 사돈 어르신들 마음은 또 오죽하실지...


사실 걱정의 크기로 따지자면 저는 처음부터 줄곧 남편이 1번이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젊은 나이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또 겪는 게 안쓰러워서요.

군에 있을 때 아버지를 잃었고, 결혼 생활 중에도 친구나 선후배 장례식에 간 일이 몇 번이나 있었거든요.

힘들어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봐야 하는 제 걱정이기도 했겠죠.


온전히 세상을 떠난 그녀만을 기리지 못하고 다음, 그다음...

그러나 결국은 내 걱정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문득 부끄러웠습니다.




사람 쉽게 안 죽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진짜 죽을 수 있구나....

제가 알고 지내던 사람의 사망은 처음이라,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확 와닿았습니다.


하필 그 사고가 일어나기 바로 며칠 전 월요일에 저한테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보리차를 끓이려고 주전자 올려놓은 걸 깜빡하곤 깊이 잠들어 버렸거든요.

평소엔 행여 TV를 보거나 다른 걸 하다가 물 끓는 걸 놓칠세라, 설거지하느라 주방에 있을 때가 아니라면 타이머를 맞춰두는데 그날은 뭐에 씌었나 싶습니다.

남편이 집에 들어왔을 때 인덕션은 꺼져 있었지만 집에 연기가 가득했다고 해요.

물 한 방울 남지 않고 보리와 결명자 알갱이만 까맣게 눌어붙어 주전자는 버려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난리통 속에 반듯하게 누워 있길래 남편은 제가 죽은 줄 알고 덜컥 겁이 났다더라고요.

남편이 깨워서 물 끓이다 잠들었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어쩜 그렇게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주방 꼴을 보고서야 퍼뜩 떠올랐어요.

내가 미쳤지, 정신이 나갔지 하며 커튼을 빨고 방바닥과 벽까지 닦으며 무거운 마음으로 한 주를 보냈습니다.


나 대신 형님이 간 것 같아 괜히 미안했습니다.

아내를 잃은 게 내 남편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걸 들킬까 봐 아주버님을 마주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맡은 우리 집 냄새가 반가웠습니다.

마침 냄새가 빠질 때가 되어서였을까요, 그걸 느낄 새 없이 힘든 주말을 보내서였을까요?

아무리 환기를 시켜도 가시지 않던 탄내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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