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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Aug 19. 2023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너를 기억하고 있어.

아주 사적인 편지

다은의 글



어제는 오래 기다리던 일의 결과가 발표됐어. 기억하지? 한 달 전쯤 응시하는데 너의 도움을 구했잖아. 시연을 하는 걸 녹음해야 했는데 너는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했지. 13시간의 시차가 있어 누구는 밤에, 누구는 아침이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날은 내가 밤늦은 시간, 네가 아침 시간이었던 것 같아. 녹음을 하다 아이가 엄마를 찾아서 녹음하는데 그 소리가 다 들어갔고, 너는 잠깐 아이한테 다녀와야 해서 양해를 구했어. 규정상 녹음을 편집하거나 할 수 없었고, 너는 미안하다며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했어. 처음부터 다시 하니 자연스럽지 않기도 하고, 또 그날 나는 무척 피곤했던 터라 두 번째에 집중도가 확 떨어졌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냥 두 번째 녹음본을 쓰려고 했어. 녹음 이후에 또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마감까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너는 기꺼이 자고 일어나서 다시 하자고, 최선의 결과를 만들자고 했지


그렇게 나에게는 다음 날 자고 일어난 오전, 너는 그날 밤에 다시 만나 새롭게 녹음을 시작했고, 나는 그걸로 응시를 했어. 나보다 내 일에 더 열심히 해 준 너에게 참 고마웠어.


그렇게 응시했던 일의 결과가 어제 메일로 도착했어. 결과는 불합격. 나는 너에게 그 소식을 제일 먼저 전했지. 그렇게 시간을 내주고 열심히 해줬는데, 잘 될 거라고 응원해 줬는데, 그래서 좋은 소식을 꼭 전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참 많이 아쉽더라.


최근에 나는 실패에 꽤 단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거든? 당시에 불합격이 되어 내가 부족한 건 아닐까 실망했던 일이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잘하고 못한 것에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더라고. 결과를 받아 들고 실망하고 풀이 죽었던 내가 억울할 정도로 말이야. 내가 만약 배우라면 연기를 잘하고 못하느냐에 상관없이 감독이 찾고 있는 배역과 내 캐릭터가 맞지 않았던 것뿐이었던 거야. 그런데 그렇게 단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기다렸던 이메일에 거절의 말이 적혀 있으니 마음이 내려앉더라. 



“우리는 해당 포지션에 요구되는 역할에
더 적합한 자격을 갖춘 다른 후보자와 함께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분명 다른 후보자는 내가 아는 사람들일 거고, 나와 같이 교육을 받거나 그 후에 받았을 분들이거든. 그래서 이 말은 내가 그들보다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어. 사실 이런 마음은 전혀 말하지 않고 너에게는 결과만 알렸는데 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지. 



"Challenge Accepted!"


“너무 슬퍼하지 마. 우리가 아직 준비가 안 된 거야. 이건 더 배우고, 경험도 더 쌓으라는 말이야. 다음 도전을 위해 준비하자. 나는 도전을 받을 준비가 됐어!” 


무조건 괜찮을 거라는 위로가 아니었어. 그래, 어쩌면 나는 경험이 더 필요했을지도 몰라. 나에게 주저앉지 않도록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해주는 네가 참 고맙더라. 그리고 벌써부터 도전을 받아들인다니 웃음이 났어. 아직 다음 도전은 오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지난 편지에서 그런 말을 했잖아. 네가 한 마디를 하면, 그 마음까지 내가 알아준다고. 나도 그래.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은 그 행간을 네가 알아주잖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를 거야.  


요즘은 삶의 수많은 다른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어. 누군가의 탄생과 또 누군가의 이른 죽음, 몸과 마음의 아픔, 도전과 실패, 사랑과 이별과 같은 것들. 그 안에서 나는 어디쯤에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마음이 부유하곤 해. 또 다른 이들은 그 안에서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사는지 괜한 걱정이 되기도 하고. 


마음 어딘가에서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너를 기억하고 있어. 

서울에서 우리가 함께 걷던 어느 날의 여름밤이 떠올라. 

너의 단정하고 다정한 말투와 따뜻한 미소도. 


네가 잘 지내고 있기를.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자유롭고 안온하기를. 



사진: Unsplash의 Oskars Syl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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