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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Sep 05. 2023

문득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아주 사적인 편지

다은의 글


벌써 편지를 받은 지 열흘이나 지났네. 늦은 답장에 미안함을 전해. 닫힌 문에 감사한다는 그 편지를 받고 참 많은 일이 있었어. 그다음 날 한 자격시험을 봤어. 그리고 세 시간의 시험이 끝나 후, 합격 소식을 바로 전해받았지. ‘pass’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종이를 받아 들고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 다음날 온라인 합격증을 받을 때까지 어디에 말도 안 하고 기다렸어. 문득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너의 말이 떠오르더라. 

 

한편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으면서도, 지난 몇 년의 나의 코칭 여정이 떠올라 벅차올랐어. 물론 이 자격 하나에 나의 일상이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Milestone(이정표)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작년부터 나는 이 자격을 따야지 했거든. 작년 상반기 상위 자격과정을 듣고, 연말 전에 자격을 따야지 했지만 생각보다 채워야 할 요건이 많이 남아있더라고. 그런데 올해 초에는 응시자격을 다 갖춰 놓고도 시험 보는 건 자꾸 뒤로 미뤘어.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은 마음의 문제였을까, 나의 게으름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다른 할 일이 많았던 걸까. 아무튼 그런 많은 장애물을 넘어 드디어 마무리를 한 느낌이야.  


시험이 끝난 후 며칠이 지나고 나는 문득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여름 내 하고 있던 몇 가지 프로젝트가 8월 말을 기점으로 다 마무리가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겼어. 또 그동안 나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거든. 이렇게 가면 안 될 것 같은 쉬어야겠다는 알람이 울렸달까.


금요일에는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프로젝트 마무리를 했어. 토요일 오전에는 미팅을 하고, 오후에는 친구와의 약속에 나갔어. 오랜만에 미술관에 가고, 한강을 산책하며,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지. 일요일에는 밀린 집안일과 잠깐이지만 손님맞이를 했어. 그리고 비행기표를 샀고, 월요일 아침에 비행기를 탔어. 



 하루 전 비행기표를 사서 떠나다니! 

어떻게 보면 대책 없는 무계획 여행이야. 목적지는 필리핀 마닐라. 숙소는 친구네 집. 그런데 나는 친구 집 주소도 몰랐어. 친구가 공항으로 데리러 오기로 했거든. 그래서 왕복 항공권만 사서 친구들 줄 선물로 라면과 화장품 몇 가지를 전날 밤에 챙겨 떠나왔어. 얼마나 별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인지 알겠지? 


너와도 한국생활이 겹쳐 만난 적이 있는 마리안의 집에 묵었어. 이렇게 무계획 여행이 가능했던 건 다 마리안 덕분이야. 공항 픽업에 집에 도착하니 나를 위해 한국음식으로 양념치킨과 김치볶음밥을 배달시켜 줬어. 또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함께 아는 필리핀 친구에게 연락을 돌려줬어. 물론 갑작스러운 약속에 많은 친구들이 올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참 좋은 시간을 보냈어.  


마리안은 자신의 유학 시절 대학원 생활을 함께 했던 일본인 친구 유리상도 소개해줬어. 유리상은 방글라데시에서 일하고 있는데 잠시 휴가차 필리핀에 와있는 중이었거든.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유리상이 여러 도시에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눴어.  


그리고 저녁식사 자리에는 제이크와 션이 합류했어. 제이크는 나와 마리안이랑 필리핀에서 한 프로그램에 참가하느라 만난 사이야. 그리고 션은 제이크의 친구로 둘이 같이 한국에 여행온 적이 있고, 당시 나는 한국 여행의 가이드처럼 같이 시간을 보냈어. 또 션은 올해 초에 다른 친구와 한국에 놀러 온 적이 있기도 해서 서울에서 만나기도 했지. 아무튼 몇 년 만에 만나는 오랜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하며 예전의 이야기와 또 지금의 생활을 나눴어. 함께 아는 친구들의 이야기도 하며 추억을 나누는 시간이었어. 


  

나를 돌보는 시간, 셀프케어


친구들과의 약속이 없는 시간에는 그야말로 셀프케어의 시간으로 채웠지. 네일숍에 가고, 마사지를 받고, 필리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했어. 한국에서는 시간이 없다고 늘 미루던 일이었는데 오랜만에 여유롭게 변화의 시간을 가진 것 같아. 미용실에서는 가장 밝은 색으로 염색을 하고, 머리를 단발로 잘랐어. 최근 몇 년 간 가장 큰 외적인 변화가 아니었나 싶어. 마사지를 받으면서는 뭉친 근육들 덕에 고통이 따랐는데 그동안 몸에 긴장과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여있었나 봐. 평소와는 다른 방법으로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어. 



환대를 받았던 시간들

신기하게도 여행을 가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 늘 다른 사람을 챙기는 나에게도 받는 순간이 있기를 바란다는 말.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참 많은 것을 받고 돌아왔어. 마리안은 내가 아무 준비도, 계획도 세우지 않고 몸만 가면 될 수 있게 이것저것 다 챙겨줬지. 마지막 날은 내가 잠들어 있으니 좀 더 자야 한다며 깨우지도 않고 팬케이크를 만들어 아침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어. 


한창 일하느라 바쁜 친구들은 내가 왔다는 소식에 바쁜 일정을 빼내 달려와주고, 와서는 밥을 사줬어. 마지막 날 만난 칼라라는 친구와는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일이 바쁜 친구가 나를 만나기 위해 상사에게 양해를 구해 한 시간 일찍 퇴근을 하고 나와줘서 가능한 일이었어. 친구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들었던 순간들이야. 그럼에도 이번 여행에서 몇 년 만에 보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참 좋았어. 주로 친구들이 한국에 여행 왔을 때 만나게 되는데 반대로 내가 여행자가 되어 친구들의 일상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짧은 여행의 끝


지금은 며칠간의 짧은 여행을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어. 떠나기 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일상이지만 여행에서 마주했던 좋았던 느낌이 일상에도 조금 오래 남아있으면 좋겠어. 


너무 내 얘기만 잔뜩 늘어놓은 글이 되었네. 분명 이 글을 읽으면 '우리 집에도 놀러 와!'라고 이야기하겠지? ;)


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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