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견디라는 이기적인 위로
살면서 참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고,
우리는 그런 말을 할 때가 종종 있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이렇게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 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일들.
왜 그런 일들이 유난히도 나에게만 일어나는 걸까,
되물어보면 결국 답은 없었다.
나는 결혼한 이후로 구급차를 꽤 많이 탔었다.
임신 중에 시댁과의 마찰로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더 큰 것은 임신 중기를 지난 뒤
저녁을 먹고 갑자기 높은 고열로 난생처음 경험했던
40.5 도의 숨이 멎어지고 상황,
이것이 가장 컸던 거 같다.
눈앞이 캄캄해서 경련이 일어나고 눈이 뒤집어지는, 죽음을 감지했던 순간에 급히 구급 휠체어를 타고 구토를 하며 간신히 숨통이 트였던 긴박했던 때.
그 뒤로 다행히 아이는 잘 커서 자연분만으로 출산을 했지만 산후조리 중에 복통과 미열이 계속 오고 배가 아팠었다.
처음이라 잘 모르니 훗배앓이라고 진료받으니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통증은 가시지 않고 열은 더 올랐다. 그래서 급히 대학병원으로 이동하여 진료를 봤다. 아이는 산후조리원에 혼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가 응급 상황인지도 모르고 절뚝거리며 꿋꿋하게 외래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검사하고 결과를 보니, 왼쪽 난소에 큰 종양이 있었고 이것이 꼬여서 괴사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위급하고 긴박한, 응급상황 속에 수술할 수 있는 담당 교수님은 학회 도중이었으며 호출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오셨다. 그런데 나는 수술을 거부했다.
사실 무서웠다.
난소 하나를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리석게도 아닐 거라 믿고 버티며,
반나절을 입원하고 수술을 미루다가...
결국 수술을 받았다.
복강경으로 난소의 큰 종양을 제거하고 입원실에서 신생아와 떨어진 채로 혼자 젖을 짜내며 버리고
또 버리며 매일을 울었다. 항생제로 온갖 약을 먹고 투여를 받으니 나의 모유는 쓸모가 없었다.
매일 울면서 유축기로 양쪽 가슴을 짜내고
수건으로 닦고 다시 짜내고 닦아내니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다.
환자복은 얼룩진 모유로 축축했고 계속 신경이 쓰이니 신경이 더 곤두섰다. 그리고 우울감이 나타났다.
2인실에 같이 계시는 환자분께 피해가 갈까 봐,
이불로 유축기 기계를 덥고,
소리를 최대한 들리지 않게 한 손으로 부여잡고
한 손으로 유축하고 버리고 그렇게 애를 쓰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모든 게 처음이고 낯설어서 모유를 먹이지 못했던 죄책감, 혼자 병실에 남아있는 외로움과 무서움,
같이 쓰는 2인실 환자분의 많은 지인과 동료분들이 병문안을 오고 가는 걸 보며 내 처지가 씁쓸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저 처자는 왜 아픈 거래"부터,
"무슨 수술한 거래?" 라며 나에 대한 대화를
그분들끼리 오고 가며 딱하게 나를 슬그머니 바라보셨다.
"아기를 낳았는데 난소에 문제가 생겨서..." 라며
"아이코... 아이고 어째..." 라며 얘기하시던 분들.
걱정해 주시는 마음도 알겠지만,
딱하게 보시는 분들의 마음도 알겠지만...
왠지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피하고 싶었다.
그 말이 상처가 되고 이기적인 위로가 되었다.
도대체 이 고통은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에 대한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둘째 출산 이후에도 큰 사건이 있었다.
기저귀 갈이대에서 딸아이가 떨어졌다.
나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숨을 못 쉬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공황장애가 오며 쓰러졌다.
바닥에 엎어져 눈물을 흘리며 말을 못 잇고 숨은 점차 거칠어져 헐떡였다. 나는 또 쓰러져서 눈을 뜨지 못하고, 남편은 알 수 없는 용어를 쓰며 구급 대원분들에게 다급하게 상태를 봐달라 했다.
그 뒤로 나는 갑자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미열에서 서서히 고열로 넘어갔다.
게다가 그때 당시 코로나 시국이라 받아주는 병원도 거의 없었다. 일단 고열이라고 하니 다양한 상황을 유추해서 환자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운 좋게도 수속할 수 있는 병원이 있었고,
나는 주사를 맞고 잠깐 잠이 들며 짧은 시간 안에 회복을 해나가고 있었다.
고통이 고통으로 상쇄되듯 점점 나아졌다.
가끔 내 인생은 왜 이리 지독하냐며 얘기도 하고, 불행인 거 같다며 혼자 곱씹기도 했다.
때로는 그 생각이 잠식하고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다가,
결국 지쳐 나가떨어져 버린다.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이,
다 사라진 듯 허물만 남은 껍데기처럼.
이 껍데기를 달고 뭐 하러 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저 태어났으니 순리에 맞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결에 따라 살다 보니,
살아가지니 그렇게 되었다.
그건 그저 이기적인 위로가 된 것이다.
태어난 사주팔자에 따라,
자라온 환경에 따라 그리고 운에 따라,
다 때가 있다고 얘기하다 보면
결국 그때는 도대체 언제일까 싶다.
고통을 견뎌보라.
그 고통을 견디다 보면,
이다음에 더 큰 일을 겪었을 때에는
과거의 고통은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며
얘기하겠지만 세상에 아무렇지 않은 게 어디 있을까.
사람 사는 세상, 우리 인생 다 하나하나의
의미가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건 없다.
사실 나는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말을 이해 못 하겠다. 왜 아파야 하는 걸까, 청춘이라는 '젊음' 하나만으로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사회 울타리는 점점 아픈 청춘을 돌봐주지 못하고 있다.
이기적인 노욕의 찬 우리 어른들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정말 이기적인 위로다.
"우리 때에도 다 겪어본 거다, 다 그런 거다."
그 나이가 들수록 어제 보다도 더 잘 살아갈 수 있겠느냐며, 살면서 힘든 일들이 얼마나 많으며 이제 시작이다라고 얘기하면 할수록...
이제 막 새로운 희망과 꿈을 품은 젊은이들에게는
더 멀어져만 가는 거 같다. 도돌이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