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파동

회복의 시간

by 소극적인숙



내 곁에 있던 병마는 사라진 거 같다.

하지만 내가 나약해지면 또다시 찾아올 거다.

나는 조금이라도 회복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자, 전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리하지 못한 식기와 냄비들, 그리고 창틀 청소와 간단한 욕실 청소, 애벌빨래 거리와 세탁 등에 다시 신경 썼다.

며칠씩 놔두었던 분리수거도 매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빨래를 차곡차곡 접고 정리하였고,

남편의 옷을 애벌로 빨래하고 두 번, 세 번 세탁을 하고 헹굼 하며 냄새가 나지 않도록.

여름이니깐 좀 더 쾌적하게 옷 입기를 바랐다.



엄마인 내가 아프면서 그동안 아이들을 돌봐주지 못했던 부분들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죄책감이 들었다.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닌데, 이젠 나이가 들어가니 아픈 몸이, 건강하지 못한 내 자신이 짐덩어리가 되었다.


그래서 그 마음이 계속 걸려, 아이들 학업과 집안 가정일 등에 전보다 더 예민하게 신경이 쓰였다.


최근 들어 숙제와 일기, 학교 수업과 유치원 수업이 어땠는지 아이들과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미처 챙겨드리지 못했던 친정부모님의 이사 등이 마음에 걸렸다.


두 분이 사는 곳에 짐을 보니 거의 4인 가족 구성원 이상의 짐들이었다.


이럴 때 내가 더 건강했다면, 친정엄마 손입 트고 손가락 마디가 빨갛게 부어오르는 걸 바라보며 속상해하지 않았을 텐데...


혼자 속으로 자책을 하기도 했다.

나의 아픔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아파서 누워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내가 봐드리지 못한 부분이 죄송스러웠다.



나 한 사람이 고작 어떤 존재라고 하며...

나를 낮추며 지냈던 시간들이었는데...

생각 외로 나는 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주부, 엄마, 딸, 아내 역할 등,

그리고 내가 새롭게 시작한 이 브런치스토리 세계까지.


나는 한번 무언가에 빠져버리면 몰입해서 푹 빠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어떤 업무나 일을 할 때 그것 이외에 다른 걸 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어찌 보면 융통성이 없다.


다만 계획적으로 뭔가 집중해서 하기 시작하면 다른 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거기에 몰입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다만 멀티 플레이어가 안 되는 사람이다.




사실 지금도 내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걸 느낀다.

수시로 흘리는 땀의 양이 많아졌고, 기력이 쇠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졸음이 전보다 더 많이 쏟아졌다.


비가 내리는 장마주간이 되면 출산 후에 오는 산후통처럼 뼈마디와 관절이 아프고 붓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내가 왜 더 움직이려는 이유는 뭘까.

하루를 살더라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기 위한 몸부림일까.


내가 그동안 책임지지 못했던 역할들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몸부림일까.


회복의 시간은 조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파동이 일어났다.


사실 나는 지금도 두렵다.

내 회복의 시간이 조금 천천히 흘러가고 괜찮다고, 그 말을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 자신을 방어하는 거 아닐까.

무언가 해내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는 걸.


나는 지금 생존을 위해 사는 건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사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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