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팩 한 박스

by 소극적인숙

날이 추워지고 남편 입에서 "춥다. 허어 추워!"라는 말이 자주 들릴 즈음, 현관 앞에는 늘 한 박스의 핫팩이 도착해 있었다.

P는 군인용으로 인기 있는 제품을 검색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로켓 배송으로 주문한다.

어쩌면 그것이 그만의 월동 준비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매일 그것을 챙긴다. 출근할 때도, 출동할 때도.

나는 아이들 하원 준비를 하며 슬쩍 하나를 뜯어 주머니에 넣곤 했다.


"어? 이거 제법 따뜻한데?"


생각보다 꽤나 유용했고, 겨울이 다가오면 더욱 손이 갔다. 겨울이 되면 외투 속 주머니에 느껴지는 열감이 참 좋았다. 뭐랄까 묘하게 포근한 느낌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나의 배가 아픈 날에는 그 핫팩을 뜯어 배 위에 올려놓거나 허리 밑에 깔고 눕기도 했다.

삼십 분 정도 지나면 통증이 견뎌졌다.


처음에는 뭘 이리 많이 샀냐며, 대용량은 짐만 되고 비싸다고 투덜거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랑 아이들이 잘 챙겨 쓰고 있다.

계절에 상관없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꽤 쌀쌀해졌다.

남편이 생각난다.

가을은 좋지만 추워질수록 습관처럼 날씨 예보를 확인한다. 남편이 또 생각난다.

겨울이 딱 질색인 그가 떠올라서다.

누구에게 기대지도 않고, 핫팩 하나로 겨울을 버틴다.


반대로 나는 겨울이 좋다.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나대로 여름보다는 겨울이 좋다. P처럼 여름을 도저히 즐기지 못하겠다.


언젠가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

핀란드에 가서 산타할아버지와 사진을 찍는 것.

P와 같이 가면 좋겠지만 그럴 때면 그는 시큰둥했다.

대신 옆에 있던 아들만 눈을 반짝거렸다.

엄마랑 아빠랑 그리고 동생이랑 꼭 가고 싶다고 얘기해 준다.


그 순간 괜한 사치를 부린 건 아닐까 싶었다.

붉게 갈라지고 하얗게 각질이 일어난 남편의 손등이 생각났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트고 마른 손.

겨울에도 출동이 많은데, 내가 너무 가벼운 꿈을 꾼 건 아닐까.


상자 속에 담긴 핫팩으로 집안과 바깥의 겨울을 버텼던 그에게 미안해졌다. P의 곁에서 핫팩처럼 온기를 줄 수 있는 가족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올 겨울에는 우리 가족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온기로 오래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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