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페이가 늘어날수록 우리 부부 사이는 참 냉정해진다.
일부러 아이들 목소리를 들려주면
"응, 사무실이야. 아빠 너무 바빠."
한숨 섞인 숨소리를 들려줘도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오늘도 좀 늦어."
어제도 늦었으니 오늘은 괜찮겠지 싶어 전화를 걸면,
"응, 또 초과야."
주말엔 더 바빴다.
얼굴 마주 보면 대화를 하려고 하면 이미 외출 준비를 하고 있다.
"어디가? 회사가?"
"응, 병원을 예약해서"
그의 생존 방식이다.
남편은 오전에 정형외과에 가서 도수치료를 받는다.
오후에는 내과에 가서 속 쓰림 약을 처방받는다.
결국 바빠서 아내와 얘기할 시간도 부족하다.
이곳에 연고도 없는데,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싶다가도...
속사정 다 얘기하면 뭐 하나 싶다.
그는 몸을 고치려 병원을 다녔고, 나는 마음을 붙들러 병원을 찾았다.
같은 집에 살지만, 서로가 다르게 살아갔다.
나는 상담실에 앉으면 남편과의 사이, 아이들과의 관계,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찾아오는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가끔씩 나 자신에 대한 생각, 최근 들어 바뀐 점 넌지시 얘기했다.
처음에는 입도 잘 안 떨어졌다.
말을 더듬으며 얘기했었는데 요즘은 술술 나온다.
남편에 대한 상담을 하면 선생님은 늘 비슷한 말을 하셨다.
"남편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입장이 다를 수도 있어요."
처음에는 억울했다.
뭐야 남편을 편들어주는 건가?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이 남았다.
나만 서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P도 서러웠을지 모른다.
"같이 방문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상담을 하면 좋겠지만... 그랬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겠죠."
"남편 분이 여기 오시진 않을 거 같고요. 현실적으로 그 부분을 당장 해결할 수는 없으니, 그 속에서 최선을 찾아야겠죠."
감성에 젖기보단, 받아들이는 게 나았다.
나는 소방관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니깐.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적응할 수밖에 없다.
소방관은 아니지만, 나도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어제 고충민원 문제로 많이 지쳐 있던 남편이 생각났다.
그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법을 바꾸고 회칙을 바꿔야 가능한 일들인데 민원인은 빠른 해결을 원하는 거 같았다.
남편은 저녁도 못 먹었다고 얘기하는데.
퇴근 후 포도 한 송이로 저녁을 때우는 모습이 참 딱했다.
입맛이 없다며 밥을 못 먹겠다고 하니 이상했다.
그렇게 밥, 밥, 밥을 찾던 남자인데.
오늘 저녁은 맛있는 배달 음식에 소주 한 잔을 권해볼까 한다.
각자 한 주 멀리 돌아봤으니 그래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