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비를 맞던 어떤 어머니와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팔로, 아이의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며 비를 피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때 나도 모르게 남편을 툭 쳤다.
“우리 아들과 비슷한 또래 같은데?”
“응? 그러네. 그래 보인다.”
그런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트렁크에 우산이 몇 개가 있는지를 파악했다.
신호가 멈추면 남편이 차에서 내려 우산을 가져다 주기로 대화를 마쳤다.
캐리어를 끌고 가던 어머니는 뜻밖에 우산을 받아 놀라면서도 감사의 인사를 건네주셨다.
나는 그때의 남편이 조금 멋져 보였다.
그래, 이게 바로 소방관이 할 일이지.
이 일은 약 5년 전의 일인데 비가 오면 꼭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기쁨을 그때 알았다.
이렇게 우산 하나로 두 사람의 마음이 통했었는데.
요즘은 그럴 일이 없다.
남편과 내가 같이 있는 순간들이 점차 적어진다.
돌이켜보면 배가 불러 출산에 임박했을 때가 나름 행복했다.
하나 된 마음으로 아이가 무사히 출산되기만을 바랬으니깐.
그때는 아이 물건을 사는 재미도 있었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며 사진을 남기는 것도 좋았다.
요즘은 같이 붙어 있는 시간이 조심스러워지고 점차 날이 서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조금씩 변해가는 걸 느낀다.
무뎌지고, 감정이 마르고, 공감이 적어지고 있다.
나도 P도 그렇다.
내가 소방관이 아닌데도 무뎌지고 있다.
직업 특성상 때때로 감정을 빼고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온다.
잘못이 없어도 있어도, 모든 걸 감당해내야 한다.
외롭게 홀로 견뎌야 한다.
도와주는 사람도 거의 없다.
가끔 감정을 빼고 이야기하다 보면 P가 AI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거울치료가 되라고 나도 그와 비슷하게 말을 하면 기분 나쁜 내색을 표현한다.
내가 괜히 그랬구나 싶다.
수십 년 일하면서 삶과 죽음을 많이 봐왔던 사람인데.
이 사람도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 벽을 세우는 걸까.
나에게는 큰 일이여도, P앞에서는 작은 일로 여겨진다.
사소한 감정을 내세우면 피곤하니깐, 괜스레 일을 키우기 싫어진다.
내가 싸움하자고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아닌데, 나도 터놓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하는 건데.
왜 감정이 뒤섞이고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걸까.
아이들은 제법 컸다고 엄마, 아빠 더 이상 싸우지 말라고 얘기한다.
"엄마도 싸우고 싶지 않은데..."
"아빠도 싸우기 싫은데..."
부부가 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다.
소방관 트라우마 치료도 중요하지만, 배우자 심리상담 치료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처럼 곁에 있는 가족도, 속으로 앓이하고 있는 배우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