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어느 날이었다.
하늘은 맑고 무척이나 더웠다.
아이들은 손선풍기를 흔들며 까르르 웃어 보이지만 정작 나는 얼굴이 흘러내릴 정도로 울상이었다.
덥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었던 아침.
전혀 예상치도 못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웃을 걸 그랬다.
평소처럼 육교 옆 승강기를 탔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내부 버튼이 모두 파랗게 켜졌다가 꺼졌다.
“엄마! 엘리베이터가 이상해!”
그러자 문이 순간적으로 ‘쾅’ 소리를 내며 멈췄다.
"버튼 주변에 기대 서지 말랬지? 똑바로 서 있어야지."
"아니야, 엄마. 나 그대로 서 있었는데?"
"근데 버튼들이 왜 파랑불이 다 들어오고 멈췄다가 풀렸다가 그래?"
즉각적으로 뒤돌아 살펴봤다.
문은 닫히기 직전, 살짝 틈이 보인 상태로 멈췄다.
아들과 나는 갇혔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급한 대로 비상호출을 눌러봤다.
"뚜... 뚜... 뚜우..."
신호가 가는 소리만 들릴뿐 어떠한 대답도 없었다.
나는 다시 여러 번 비상호출을 눌러봤지만.
"치이이... 뚜... 뚜.. 치이이이... 뚜..."
여전히 듣기 힘든 소리만 나왔다.
본능적으로 엘리베이터 문 틈 사이를 살펴서 억지로 밀어 보았다.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이젠 그만 119에 전화하라 했는데...
아들과 내가 갇혔는데 살아야 하지 않나.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아이는 열리지 않는 승강기를 보더니, 몇 초 후에 소리를 질렀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여기 사람이 갇혔어요!!!"
그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들었다.
나는 소방관의 아내이다.
일단 아이에게 침착하자고 이야기했다.
119에 전화할 거라고 설명을 해줬다.
상황실과 연결하려면 일단 통화 소리를 잘 들어야 하고, 녹음이 되어야 하니깐.
엘리베이터와 실랑이를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우리는 깨달았다.
본능적으로 119 번호를 찍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연결은 빠르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위치를 말을 못 하고 있다니...
여기가 어디인지, 승강기 번호를 찾아서 이야기하려니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네. 앞이 잘 안 보여. 뭐가 왜 번호가 안 보이지?')
"여기... 그... 그... 대로변에 있는 큰 육교예요. 이 근처에 스타벅스!! 다이소 있어요!"
"농협은행이요! 거기 바로 옆에 육교예요. 거기 엘리베이터에 갇혔어요!!!"
상황실에서는 위치와 주변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출동한다고 답변해 줬다.
빨리 와달라고 나는 다시 한번 얘기했다.
밀폐된 공간이고 엘리베이터이고 덥다며.
아이가 있어서 빨리 와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지나가던 아이 친구 어머님이 계속 이 상황을 왔다 가며 보셨다.
억지로 바깥에서 문을 열려고 하시는데 나는 계속 괜찮다며 걱정을 덜어드렸다.
그리고 몇 초 후에 또 다른 아들 친구 어머님이 오셨다.
괜찮냐며, 우리의 생존 여부를 확인해 주셨다.
이 더운 날에 감사하고도 미안했다.
"괜찮아요.걱정 마세요. 우리 119에 전화했어요."
상황을 진정시켰다.
그 뒤로 나는 아이가 최대한 불안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괜찮아, 엄마가 포키리스웨트 줄게. "
"손선풍기도 있잖아. 조금만 참자."
"오늘은 웬일로 엄마가 이온음료랑 선풍기를 들고 나왔을까!"
그렇게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수업 시간이 늦어져 방과 후 선생님께 전화로 상황을 말씀드렸다.
통화를 마치고 난 후,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
'하필... 이럴 때... 왜!'
순간적으로 남편이 구조 현장에서 겪었을 모습이 떠올랐다.
가족들이 위험한 상황에 있는데 손 쓸 방법이 없다.
조금 분했다.
나중에 남편과 대화를 해보니 서장님에게 보고 중이어서 휴대폰을 볼 수 없는 상황이였다.
이해가 되면서도 조금 서운했다.
그 사이에 신고를 하고 출동한 지 약 8분도 안 되어서 왔다. 우리는 구조되었고, 마지막으로 인적사항을 이야기했다.
아들과 나의 생년월일을.
소방관의 아내로 산 지 8년 차가 되었지만 다양한 일을 경험하는거 같다.
내가 소방관도 아닌데, 왜 소방관 같은 걸까.
남편은 가끔 한 마디씩 이야기한다.
"너는 참... 한 사람이 일생에 겪을까 말까 한 일들을 다 겪어."
"그렇게 자주 119에 전화하고 출동 걸면 저장된 기록이 있어서 우리도 참고 한단 말이야."
"그럼 나...블랙리스트야...?"
그럼에도 이렇게 지나가야 할까.
애써 위로해 보며 정신 승리를 해본다.
“그 육교 승강기 너무 자주 고장이 나서, 결국 터질 일이 온 거야. “
“하필 우리 모자(母子)가 겪은 거야.”
“사람들도 그랬어,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다며.”
“운이 안 좋았어. “
"하지만 우리 덕분에 불편함이 위험이 될 수 있다는것을 알았잖아!"
나는 씩씩거렸다.
"작은 불편의 시작은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단 말이야!"
누구를 위한 호소인지 남편은 왜 자기한테 따지냐고 말렸지만 억울했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그 승강기를 타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한번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내가 직접 겪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뿐만 아니라, 몸이 불편한 노약자나 장애인이었다면 과연 어떻게 구조 요청을 했을까.
그 날 이후로 나는 다시 심장이 쿵쿵 뛰며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숨이 조금 가빠 오르고, 등굣길에 그 주변을 지나가면 또다시 생각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는데, 왜 이런 거는 잊어버리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