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가득한 집
나는 불이 멀리서 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 불이 내 주방에 시작될 줄은 진짜 몰랐다.
호두과자 하나 데우다 집을 태울 뻔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진짜로.
글을 쓰는 동안, 재난안전 안내문자 하나가 왔다.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차량은 건물 주변 도로를 우회하고, 건물 내 시민은 건물 밖으로 대피할 것"
보통 화재라고 하면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많이 떠올린다.
공장, 산, 고층 건물 및 빌딩 등이 밀집되어 있는 곳.
자연재해로 정전이 일어나 불이 나는 경우도 있지만, 작은 곳에서 발화가 시작되기도 한다.
나는 소방관의 아내라서, 나름 화재에 대한 안전의식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도 불을 낸 적이 있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호두과자를 전자레인지로 데우다가 그만 불을 냈다.
놀라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참 퉁명스럽게 받길래 속상함을 내비쳤었다.
알고 보니, 남편이 운전 중이었고 조수석에는 상사분이 앉아계셨다.
그도 그럴만했다.
역시나 P는 별 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지 극도로 차분했다.
"얼른, 불을 꺼야지. 타고 있는 것부터 전자레인지에서 꺼내."
"바로 꺼내라고? 지금 연기가 활활 타는 거 같은데..."
"그럼 어떡하려고, 빨리 꺼야지. 일단 타고 있는 걸 꺼내."
"연기가 너무 심하게 나서, 집 안 곳곳에 냄새가 엄청 맵고 눈 뜨기가 힘들어."
갑자기 화재 대피 방법에 대해 배웠던 안전교육이 생각났다.
코와 입을 젖은 수건으로 막고, 연기를 마시지 말 것을.
식탁 위에 젖은 손수건을 놔두고, 조심스럽게 전자레인지 문을 열었다.
"취이이익"
세상에, 전자레인지 전용 플라스틱 용기가 까맣게 타 있었다.
눌어붙은 흔적은 정말 끔찍했다.
호두과자는 숯처럼 검게 타서 그대로 굳었다.
남편은 현장에서 수백 번의 화재를 겪은 사람이지만, 나는 생에 이번이 두 번째다.
P는 익숙했지만, 나는 여전히 무서웠다.
다섯 살의 집을 다 태웠던 일, 그리고 내가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 우리 집.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를 보는데 손이 떨렸다.
연기는 집 안 곳곳을 다 채워 나가며, 거실 천장 위로 빠르게 타고 올라갔다.
나는 기침을 계속했다.
젖은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지만 뭔가 부족했다.
눈이 맵고 시리고 따가웠다.
안경을 쓰고 실눈을 뜨며, 서둘러 집 안의 방문을 하나씩 닫았다.
그리고 거실과 주방 창문을 활짝 열었다.
다행히 두 아이들은 학교와 유치원에 있어서 시간을 벌릴 수 있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계속되었다.
어릴 적, 불을 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안 좋은 생각이 떠오르자, 다시 남편에게 연락을 하였다.
"여보, 이거 진짜 심한데... 내 몸에서도 집 안 물건에도 탄 냄새가 배겼어."
"일단 전자레인지부터 버려야 해. 큰일 나. 아니 뭐 하다가 전자레인지를 태워."
"호두과자를 데우는데... 분명히 내가 30초를 눌렀던 거 같은데 기다리다가..."
"응, 왜 그런 거야."
"그때 국도 같이 가스레인지에 데우고 있었거든. 전자레인지가 다 데워지면,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어."
"응."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야. 가스불을 봐도 탄 게 없는데 혹시 모르니 바로 껐어. 그런데 전자레인지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잖아."
상황을 이리저리 설명하며, 119에 전화를 해야 할 거 같다고 말해봤다.
역시 별 반응이 없던 P였다.
그러다가 한참 뒤에 다시 연락을 받았는데, 내가 보내준 영상을 보고 심각함을 안 거 같았다.
"야, 이거 뭐야... 완전 화재야. 이러다가 큰일 나. 밑에 수납장까지 다 탈뻔했어."
"내가 얘기했잖아... 진짜 심각했다고."
"알았어, 일단 집에 가서 다시 얘기하자."
저녁이 되자,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서둘러 창문을 더 활짝 열었다.
공기청정기를 제일 강하게 틀고, 최대한 환기에 집중을 했다.
내 몸에서 탄 냄새가 진하게 났는데, 그건 마치 담배 냄새처럼 독하고 기침을 부르는 냄새였다.
연기가 자욱하게 낀 집 안을 둘러보더니 남편은 놀란 기색을 비췄다.
"남편이 소방관인데, 불을 내면 어떡해."
"그러니깐 여보, 나도 몰랐어."
호두과자가 불쏘시개가 될 줄 몰랐다.
분명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있는 용기로 데웠는데.
여태 잘 사용해 왔다.
호두과자를 여러 번 데우면 사용하는 동안,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 견과류가 데워지면서 수분이 날아가고, 그 잔열이 견과류의 기름과 만나서 불을 나게 한 거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간식 하나를 데울 때도 전자레인지 앞을 떠나지 않는다.
타이머를 다시 확인하고, 30초마다 서서 살핀다.
아마도 그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서 더 조심스러워진 거 같다.
불은 생각보다 늘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남편의 하루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소방관 아내라면, 나부터 정신 차려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