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정규 학교 수업에서 만나게 되는 친구들은 같은 또래의 나이에, 같은 지역의 친구들이기에 특이사항이 별로 없다. 누가 전교 1등인지, 반장은 누구인지 아니면 선도부는 누구인지 정도일 뿐이다. 일부러 고 3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친구 얼굴보다 잿빛 모의 고사 시험지 색깔만 떠오른다.
그러나 어학원에서는, 특히 뉴욕에서는 수업 색깔이 총 천연색이다. 미국에 박사 과정을 공부하러 왔지만 발음 문제 때문에 어학원에 등록한 이탈리아 아저씨 안토니오(Antonio), 뉴욕에 관광으로 온 김에 영어 공부를 할 겸 같은 반에 앉은 프랑스인 삐에르(Pierre), 브라질에서 온 마리아(Maria), 나이지리아에서 온 아베요(Abeyo)등등 같은 반 친구들은 피부색도 나이도 성격도 모두 천차만별이었다. 마리아 아줌마는 거의 수업에 나오지 않았고 아베요는 모가 그리 바쁜지 수업만 끝나면 바로 사라져 버려서 인사를 나눌 기회도 별로 없었다. 상급반은 소수정예인데다가 출석율이 좋지 않은 친구들 덕에 주로 안토니오 아저씨랑 나 삐에르만 수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 만나게 되는 이태리랑, 프랑스 사람이라서 궁금한 것도 많고 기대가 컸는데 그 두 남자는 말이 얼마나 많고 빠른지 나는 대부분의 수업을 투명인간처럼 앉아 있어야만 했다.
전형적인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유교의 경로우대 사상 속에서 자란 나는 서양의 토론 문화에 끼는 게 쉽지 않았다. 개인주의적인 문화의 서양 보다 전체주의적이고 복종적인 교육 문화는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 권위적인 문화에서는 연장자나 상급자에게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내용의 경중과 시비를 떠나 도전으로 여겨진다. 혹여나 내가 가진 의견이 잘못된 상식에 기반한 것인지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찰나의 순간 동안 계산을 끝냈다 하더라도 ‘저는 생각이 다른데요.’라는 한 마디로 분위기를 깰 용기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단 한 마디에 그 동안 쌓아 왔던 인간 관계 파산과 뒷끝 형벌을 감내 하기엔 수지 타산이 안 맞는 장사다. 그냥 암묵적인 동조로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남의 입에 오르지 않고 사회적 평판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다. 한 마디로 남의 눈치 보기 바쁜 한국인으로서 자아가 단단히 형성된 유럽인과의 토론은 늘 ‘드센’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만 받는 일이 많았다.
개인차가 있지만 서양 사람이라고 다 같지 않았다. 일본, 중국, 한국인의 성향이 다르듯 유럽과 캐나다, 미국 사람들의 국민성이 모두 다양했다. 영국과 독일, 북유럽사람들의 분위기는 좀 더 경직되고 조용하며 이성적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등 라틴의 뜨거운 피가 섞인 사람들은 한국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 흥이 나서 어울리며 놀기엔 재밌지만 토론이 시작되면 막장 싸움이 되기 쉽다. 그들과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룰이 거부감 없이 적용 되었고, 뒷끝의 여운도 꽤 길게 이어졌다. 특히나 안토니오와 삐에르는 국가 대항전이라도 하는지 둘의 기싸움에 나와 선생님은 들러리가 되기 일쑤였다. 가장 기억나는 순간을 꼽으면, 냉랭한 분위기를 가라 앉히고자 선생님은 음식 문화에 대한 주제를 꺼냈다. 그러나 늘 급한 성격의 안토니오가 먼저 선제 공격을 한다.
”미국은 자기네 음식이 없어. 피자와 파스타 다 우리나라 거잖아.“ 라고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유일한 미국 국적인인 선생님의 기분이 언짢을 것 같아서 선생님을 보았는데 남의 눈치만 보고 있을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건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거야. 다들 우아한 식사는 프랑스 식단을 고급으로 치지.“
단번에 안토니오의 얼굴이 붉어졌다. 중요 화제가 아닌데도 등급을 나누며 비아냥 거리는 삐에르의 화법에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고수는 몇 안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냥 끝낼 삐에르라면 나의 반감을 사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문화가 없다는 거야. 패스트 푸드(Fast Food)로 배를 채우는 음식은 문화라고 할 수도 없어. 신선한 식재료로 재료의 맛을 살리고 깊은 대화를 나누며 즐길 수 있는 식탁 문화가 아니야. 미국식 표현대로 쓰레기 음식(Junk Food)일 뿐이야. 그리고 영화는 매번 뻔한 스토리의 헐리웃 스타일 밖에 없어. 미국은 자기만의 철학과 깊이가 없이 모든지 대형 양산화 시스템이야“
한번 시작한 삐에르의 말문은 절대 스스로 닫히지 않는다. 안토니오가 아무리
”but, but but“ 하며 끼어 들려고 해도 삐에르는 차가운 눈 길로 쏘아 붙인다.
”한 마디로 미국인한테는 소비가 문화야. 음식이든 옷이든 자동차든 무조건 빨리 만들어서 많이 팔면 다라고 생각해. 프랑스는 절대로 그렇지 않아. 우리는 기업에서 만들어 주는 대로 물건을 소비하는, 생각이 없는 노예가 아니야. 소비가 인생의 목적의 될 수는 없어. 물건 하나 하나에 담은 스토리가 더 중요해.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고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옷을 대물려 입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추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게 전통이 되는 거야.“
”미국에서 치즈 먹어 봤어? 그건 치즈가 아니야 화학 첨가물 덩어리지. 프랑스에선 치즈를 사도 어느 지방 출신이고 염소 치즈인지 젖소 치즈인지, 아님 양 치즈인지 원료와 성분을 확인해. 그리고 우리는 미국인들처럼 대형 마트에 가서 산더미처럼 음식을 사고 쟁여 두면서 먹지 않아. 공장에서 찍어낸 가공품은 가축이 먹는 사료지 음식이 될 수 없어. 프랑스에선 재래 시장에 가서 직접 농부와 이야기를 하며 담소도 나누고 그때 그때 신선한 식재료를 사 먹어. 이게 인간적으로 같이 살아가는 삶이지 공장에서 찍어 내는 대로 빨리 빨리 소비하는 패스트 문화는 문화라고 볼 수 없어. 노예 아니면 같은 공장의 또 다른 기계일 뿐이야.“
삐에르가 재빨리 설명한 주장은 대단히 인간적이지만 굉장히 불편하게 들렸다. 한 끼 때우기 위한 음식에 그 많은 의미와 요리하는 정성은 언제 들이고 시장 사람이랑 담소까지 나누며 살 시간은 다 어디서 나오나? 다들 일을 안 하나? 일장 연설에 얼굴이 붉그락 거리던 안토니오가 갑자기 동조한다.
”삐에르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지만 그건 나도 이상해. 우리는 슈퍼마켓이나 대형 마트에 가지 않아. 동네 단골집에 가서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묻고 세상 돌아 가는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중요해.“
지원군을 얻은 삐에르의 연설이 다시 시작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뉴욕 뉴욕 하는데 뭐가 그리 대단한지 모르겠어. 빌딩만 높지 아름다움이 없고 격이 없어. 파리랑 비교하면 뉴욕은 유치한 수준이야. 그 유명한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도 루브르 박물관에 비하면 박물관이라 할 수 없어.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 수준과 숫자도 몇배나 훌륭하지만 우리는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야. 뉴욕은 박물관이나 건물이나 다 모조품 밖에 없다니까.“
대단한 프랑스 자랑에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다. 매번 토론의 주제가 아무리 달라도 결론은 한결 같이 ’프랑스 최고’로 이어졌다. 삐에르가 묘사한 파리는 내가 꿈 꿔 온 뉴욕 보다 몇십배나 더 아름다운 환상의 도시지만 선생님이나 나나 가본 적이 없으니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뉴요커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지만 들을 때 마다 신경에 거슬렸다.
”프랑스가 그렇게 멋있고 아름다워?“
”그럼, 비교할 수가 없어. 건물이며, 다리며, 레스토랑이며 모두 아름다워“
삐에르는 눈꺼풀까지 파르르 떨어 가며 감흥을 표현 하려고 했다.
”그럼 넌 빠리에 계속 있지 뉴욕엔 왜 왔어?“ 최대한 자제하려 했지만 참다 못한 비아냥이 나왔다.
이번엔 삐에르의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좀 전처럼 명쾌한 논리와 깊은 철학은 없는 듯했다. 선생님은 눈을 찡긋해 보이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결국 그후로 나와 삐에르는 뾰로통하고 어색하게 지냈다.
‘흥, 칫, 뿡.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놈의 빠리 내가 가본 다음에 다시 싸우자.’
20살 그때의 나는 면박은 줬지만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지는 못했기에 마음 속에는 찜찜함이 남았다. 콧대 높은 프렌치의 기는 좀 죽여 놨다는 반 쯤의 의기양양을 거름 삼아 기약 없는 미래를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