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

by 유빛나리



"저 퇴사해야 할 것 같아요."


훈련이 한참 진행되던 와중 이루어진 팀장님과의 면담.

끝을 맺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아쉬움에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이야기했다.


"아직 누구한테 말하지는 않았죠?"

"혹시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갈 곳이 정해진 거죠?"


마지막까지도 따스하게 이어지는 팀장님과의 면담과 동시에

퇴사는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동기들과 비행을 해보라며 주어진 시간 동안

함께한 동기들과 선배님들께 작별인사를 한 뒤 퇴사를 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던 한 해,

캐나다 어학연수에 승무원까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배우로 본 촬영에 들어가기 앞서

약 2달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나에게는 해보지 못한, 내가 해야 할 직업이 남아있었다.

나의 전공이자 전신인 '간호사'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시는 한의원에서 잠시 일하게 되었다.


동료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승무원'에서 '선생님'으로,

나를 마주하는 사람들이 '손님'에서 '환자분'으로 바뀌는 순간.


한의원은 따스한 분위기였음에도 의료행위란

실수라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선에서 자율성이 부여되는 업무이기에

날이 서있는 사람들과 나날들이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여러 곳에서 몸으로 습득한 경험들과

유해진 마음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것들이 따스하게 보였다.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은 없다는 것.'


그것이 사람이 되었을 때에도 같았다.

종종 자칫하면 '진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고, 볼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더 웃고 더 진심으로 소통하려 노력했다.


사람의 이면을 볼 줄 알고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안다면

그 사람의 본질이 보인다는 생각이 있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호실습을 했던 시절,

나이가 지긋하셨던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일을 하지만, 남을 도우면서 뿌듯하기도 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무거운 눈을 부릅뜨고 혼나기만 했던 실습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따스한 말이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맹장수술 후

하루 종일 보험 서류를 떼러 다닐 때,

함께 했던 간호사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네가 필리핀 의료를 잘 모르기에 내가 이렇게 함께하고 있잖아?

너도 네 나라에 갔을 때, 어려움에 놓인 환자들을 이렇게 도왔으면 좋겠어.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어떤 일이든 본질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참으로 멋지다 생각했다.


"손녀딸 같아서 참 예뻐. 이렇게 안 도와줘도 되는데."

"제가 할머니 손에 커서 이런 거 좋아해요. 불편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대로 보였다.


간호학을 전공한 이후

배우, 사업가, 회사원, 승무원, 배우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한 나는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여정 속 간절히 원하는 만큼 보상이 있기도 했고

그 절박함이 나를 갉아먹는 자존감 도둑이 되기도 했다.


어쩌다 태어나버린 우리는 이런 여행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주를 품으며 살고 있는 삶.

신발 끈을 새로이 묶고 달려가는 길에 앞서 두려움도 가득하다.

하지만 이 기나긴 레이스는 계속될 것이다.


나는 다시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아 떠난다.

다시 나에게 주어진 이 기회가 얼마나 귀한지 알기에,

고로 나는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굽이진 길 끝자락에서 나는 나를 만났다.


[작가의 말]


이왕 태어난 거,

나에게 주어진 삶이 선물과도 같다고 생각해 보는 건 어때?


꿈이 있는 자는 반짝반짝 빛난다.

거창한 꿈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매일 일상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들을 아낌없이 해온 여정 속에서 나는 행복의 비결을 알아냈다.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그리고 어여삐 여기는 태도.'

'작은 것에도 행복을 찾는 태도.'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데려다주는 비결은

결국 나 스스로에게서 찾은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