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아, 함께 해서 행복했어."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어느 따스한 봄,
부모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날인 어버이날, 아이는 세상을 떠났다.
마치 천사가 잠시 내려왔다가 간 것처럼.
매일 졸린 눈을 비비고 꾸벅꾸벅 졸며 병원 실습을 하던 시절이었다.
평소에 실습하던 병동이 아닌, 특수파트를 위한 실습이 시작되었고
내가 배정된 곳은 PICU, 소아중환자실이었다.
중환자실에 가면 각 부서에 맞는 분위기가 형성되곤 했는데,
이곳에서는 대부분 누워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급성기부터 장기입원한 아이들까지 다양했지만 보호자분들께서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계신 분들도 꽤나 있었다.
첫 실습 날, 나는 중학생쯤 되는 남자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입원경로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인한 응급실 내원.
희귀병을 진단을 받은 후 급속도로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 중환자실에 오게 된 것이었다.
보통 1-2주 단위로 병원에서 간호실습을 하는 곳과는 달리
우리 학교의 실습은 일주일에 특정 요일이 정해졌었다.
그 덕분에 병원에 매주 올 수 있었고,
올 때마다 아이의 컨디션의 변동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00아, 얼른 나아서 우리 00이 좋아하는 포도 먹으러 가야지.”
“우리 00이 엄마가 많이 사랑해.”
정해진 면회시간에 딱 맞추어서 꼬박꼬박 방문하셨던 보호자분께서는
두 눈을 꼭 감은 아이의 손을 익숙한 듯 잡으며 씩씩하게 말을 이어가셨다.
하지만 매주 방문할 때마다 늘어가는 아이의 치료기구들과
승압제로 인해 새까맣게 타들어가듯 괴사 된 아이의 손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졌었다.
이제는 아이에게 끼워진 장갑으로 인해 손도 제대로 잡을 수 없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아이의 뺨을 쓰다듬으며 애달픈 눈으로 바라보셨다.
"엄마는 00이랑 함께 해서 너무 행복했어."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사랑해', '고마워'가 전부였다.
임종이 가까워지며 모든 가족들을 호출하기로 결정했을 때,
분주해진 의료진들 사이에서 외롭게 서있던 어머니의 눈에는 허망함이 가득했고
그 모습을 마치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듯이 바라볼 수밖에 없던 나는
구석에서 차오르는 눈물을 쓱쓱 닦을 수밖에 없었다.
복수가 차올라 입원한 지 약 3주 차,
입원 며칠 전에도 축구를 유달리 좋아해 운동을 했다던 아이는 어버이날 새벽 세상을 떠났다.
왜 하필이면 그날이었을까?
천사가 왔다 갔던 것일까,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음 날, 병실에는 삐뚤어진 침대와 덩그러니 놓인 침대 커버만이 남겨져있었고
새벽 사이 분주하게 마무리가 된 쓸쓸하면서도 무거운 공기만이 남겨져있었다.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지만, 아이를 먼저 하늘로 보낸 부모의 심경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아이의 탄생으로 감동과 기쁨으로 벅찼던 나날들,
아이가 한 단계씩 커가면서 부모에게 주었던 수많은 웃음들을 두고 떠나보낸다는 것은
어떤 이별과도 다른 차원의 이별이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가 잠시 세상에 머무는 동안,
누군가를 아낌없이 사랑할 존재가 생겼다는 것은
하나의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사랑하는 법은
지금, 곁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아낌없이 보듬어주고 이해해 주며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작가의 말]
누군가의 임종을 곁에서 바라보다 보니
인생이 참으로 허무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참 많은 이야기와 단어들이 오간다.
하지만 결국 삶의 끝자락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따뜻한 말들이었다.
주어진 짧은 시간 내에 좋은 이야기만을 하기도 벅찼기에.
부정적인 이야기들과 싸움으로 가득했던 세상도
결국엔 까마득한 암흑 앞에서는 가라앉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 이제 그만 미워하고,
그만 질투하고,
그만 아파하고,
그냥 그대로 사랑하자.
그리고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