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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담 May 08. 2024

고시원 원장이 100여 명의 사람을 만나고 깨달은 것들

인생의 네 가지 지혜

  고시원에 사는 요리왕 청년은 군대를 갔다. 지금쯤 전역을 준비하고 있으려나. 00년생 열심히 사는 여학생도 고시원을 떠났고, 베트남 청년들도 고시원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갔다. 아! 대사관에서 일하는 줄 알았는데 편의점 알바생이던 중국인 남자분은 아직도 고시원에서 잘 지내고 있다. 매번 미납금으로 우리를 힘들게 했던 기러기 아빠 김 씨는 최소한의 양심을 지켜내고 고시원을 떠난 후 요즘은 친구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고 들었다.


  언젠간 다시 돌아오겠다던 미국 할머니는 정말로 다시 돌아왔다. 몇 주 전 한국으로 돌아와 3개월을 재계약했다. 정말로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곧 다시 만나자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괴상한 슈퍼맨 할아버지는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었고 변함없이 매일 맛있는 밥을 하며 이곳을 지키고 있다. 여자친구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남자친구는 예상보다는 길어졌지만 원하는 직장으로 이직한 후 고시원을 떠났다.


  주 3회 청소 이모님이 방문하여 고시원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시고, 남편은 일주일에 한두 번 고시원에 방문하여 정기 점검을 한다. 요즘은 급한 일이 있을 땐 고시원 원장을 도와주는 어르신과 젊은 청년이 있어 든든하다. 계절별로 찾아오는 누수, 결로와 같은 각종 이벤트들도 이제는 익숙해졌고 공실 공포증도 사라졌다.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했던 돈을 향한 악착같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고시원 원장의 소명과 책임 또한 함께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나도 어느새 복직을 한지 반년이 지났고, 우리는 이 생활 패턴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퇴사를 꿈꾸는 엄마는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글을 쓰고, 시간이 많아진 자영업자 아빠는 아이들을 케어하며 또 다른 도전을 위해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인생을 이처럼 스펙터클하게 만들어준 첫째 아이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고, 첫 돌이 될 때까지 엄마의 손길 보다 아빠와 할머니의 손길을 더 많이 받았던 둘째도 씩씩하게 성장하여 이제 곧 세돌을 앞두고 있다.


  고시원 사람들의 삶도 고시원 원장의 삶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우리의 만남으로 인하여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 그 누구도 명확히 알지 못하였으나 우리 삶이 어떤 방식으로든 움직이고 있음을 느낀다.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매 순간 변화하고 있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고시원을 시작하고 그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도 우리를 만나, 조금은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좀 더 쾌적한 주방에서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거나 칠흑 같은 외로움과 불안을 조금은 이해받는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작은 구멍으로 바깥세상을 바라보며, 내가 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물 밖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지고 있을지 늘 궁금하다. 우리는 평온한 우물 속에서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만나 울타리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비로소 세상의 민낯을 마주하고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에게 이렇게 큰 가르침을 주고 새로운 인생을 주기 위해 우리 아이가 그토록 대신 아팠던 것은 아니었을까.


  30대 젊은 고시원 원장이
100여 명의 고시원 사람들을 겪으며,
깨달은 삶의 지혜들은 다음과 같다.


  세상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지만, 기회를 만드는 것은 각자의 태도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 공간에서 누군가는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누군가는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고시원에 모여든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아픔과 사연을 품고 고시원에 살고 있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나만의 사연을 품고 고시원을 샀다. 나는 왜 2평짜리 고시원에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은 왜 우리 아이만 아파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다를 바 없이 무의미한 질문일 것이다. 누구나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문제를 대하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 오히려 낫다. 그것이 바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함부로 사람을 헤아리지 않기로 하였다. 성실하고 정직한 직장인이라고만 여겼던 김 씨가 10개월 가까이 연체를 하며 골머리를 섞이고 꽃다운 청년은 외모와 달리 쓰레기 방을 만들어두고 달아났다. 날라리라고만 생각했던 몽클레어 청년은 누구보다 자신의 방을 단정하게 유지하며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청년이었다. 편의점에 다니는 중국인에게는 괜한 오해를 했지만 이 모든 것은 나의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된 일들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패기 넘치는 고시원 원장을 한 없이 겸손하게 만들었다. 보이는 게 절대 다가 아니다. 사람을 선별하고 분류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 선을 지키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2평 남짓 공간에 개미굴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시원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산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선을 지켜야 함을 의미한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다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적당한 선이 지켜지기 쉽겠지만, 고시원에서는 그 이상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타인을 위해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이 선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배려이고 존중인 것이다. 가끔 우리는 가까울수록 더 많은 것을 주고, 최대한 무언가를 보태주는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적정 선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감한 사람이 다정한 삶을 만든다. 본래 나는 다소 시니컬하고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런 내가 고시원을 하면서 조금은 더 다정다감한 사람이 되고 싶어진 것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혹은 누구보다 힘들게 사는 사연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나는 좀 더 다감한 사람이 되었다. 평생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타인의 삶과 타인의 지옥이라고 여겼던 고시원이라는 공간을 서서히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다감함은 우리의 삶을 좀 더 다정하게 만들었다. 고시원 어르신에게 사골 국물을 대접하고, 미국에서 온 할머니에게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다. 냉랭한 고시원 곳곳에 서서히 주인장의 온기가 스며들었고, 팽팽했던 고시원 사람들과의 관계도 느슨해졌다. 그러니 다정한 삶을 살고 싶다면 먼저 다감한 사람이 되기로 하자.



고시원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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