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여버린 나에게 질린다
*6년째 우울증을 돌봐오고 있고 어쩌다 전재산도 날렸지만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하는 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폭력성 짙은 아빠와 별종 종교에 빠지 엄마 사이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눈치'라는 것이 빠르게 발달했다. 전체적인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하고 주변 사람의 눈썹 끝의 떨림까지 신경 쓰는 울트라 초예민이 씨로 거듭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자칫 잘못된 상상과 삐뚤어진 갇힌 세계로 빠지기 십상인데, 안타깝게도 내가 그랬다.
더불어 조현병이 의심될 정도로 나의 과거는 좋지 못했다. 헛것이 보이기도 하고(자세히 보면 잘못 본 거고) 회사에서는 환청이 들리기도 했으며, 지하철에서 사람들끼리 눈을 마주칠 수도 있는 건데 죽자고 눈싸움을 해댔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살아온 환경과 버티려던 나의 생각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부풀려졌던 것 같다. 현재는 다행히 아무런 소리도 어떤 형상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혹시나 또 그런 상황들이 벌어질까 봐 겁이 난다. 음... 이건 다음 주 병원 방문 때 선생님께 한 번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때에는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여자도 남자도 아이도 노인도 예외가 없었다. 친구가 카톡 답문을 늦게 보내면 그 사이에 '내가 싫은가?''내가 전에 만났을 때 뭐 잘못했나?''이제 나를 안 만나주면 어쩌지?' 등의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길에서 누가 날 쳐다보면 '내 옷이 별로인가?''저 사람 날 욕하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야말로 어느 것도 집중을 할 수 없었던 때다. 과도한 확대 해석과 상대의 눈치를 보는 간격은 점점 더 촘촘해지고 집요 해져만 갔다.
스스로에게 질식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말에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면 친구가 말을 많이 하고 나는 거의 리액션만 담당할 정도로 반응 장인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친구에게 나의 온 애정과 시간을 쏟아부으면 '착하고 성격 좋은 이미지를 오늘도 지켰다'는 안도감에 집에 쓰러져 잠을 잤다. 만남 이후에는 친구나 지인분들이 내가 상상하는 카톡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홀로 상처를 받고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극단적인 관계의 끝을 상상하며 마음을 후벼 파기 시작했다.
실로 그랬다. 사실 스스로를 내가 미워하는지 어쩐 지도 당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긴장된 상태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만남이 부담스러워지고, 그들의 말 한마디에 그들이 모두 미워졌다. 특히 과 친구들을 만났을 때에는 부러움에 질투 어린 마음을 두기도 했다 (건강하고 밝은 그들이 눈부시게 예뻐 보이고 부러웠다) 끝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서운한 감정들이 마음에 쌓여버렸다.
그래도 요즘은 스스로의 마음 챙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마음 돌봄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다. 이런 동향들은 앞으로도 더 많아지고 지원 등도 견고해져야 한다고도 생각을 한다.
마음이 무너지니 몸이 무너지고 인생이 무너져버리니 말이다.
나는 지금도 꼬여버린 스스로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있다. 양파처럼 끝도 없어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나는 30대 후반이 되어버린 지금에서야 세상을 조금은 온전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참 오래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