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군 Feb 25. 2024

수치스러운 너, 우울증

의사 선생님이 나를 똥멍청이로 보면 어쩌지?

*6년째 우울증을 돌봐오고 있고 어쩌다 전재산도 날렸지만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하는 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치매를 걱정하고 있던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만성 우울증입니다"

라는 진단을 내놓으셨다.


우울증...?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병명이었다. 스스로가 우울한지 어떤지조차 관심이 없었기에 더욱더 그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리 행복하진 않았다. 그리고 당시에는 의사 선생님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아니 고개를 들 힘조차 없었다) 우울증이라는 병이 수치스럽게만 느껴져 창피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이 나를

똥멍청이로 보면 어쩌지?"


의사 선생님도 나를 엉망인 사람으로 볼 텐데, 타인이 나를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그야말로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랬다. 당시 나는 남의 시선과 평가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느 직장에 취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좋은 사람'으로 비추 어질지에만 온 신경이 곤두서있던 시절이다.


그리고 동시에

'치매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지하철에서의 기억상실로 치매를 앓는 분들의 어려움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창피함, 두려움, 괴로움등은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느낀 건 아닐까...? 나중에 찾아본 이야기지만, 치매환자분들의 대부분은 당신 스스로 병원을 먼저 찾지는 않으신다고 한다.




신기해.

성희롱은 내가 당했는데,

왜 내가 창피할까?


하필 그때 회사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회식이 끝날 무렵에 변태 전무에게 성희롱까지 당해 나의 정신상태는 진심으로 온전할 수 없었다. 술에 취한 전무는(무려 큰 교회의 집사님이었던) 내 엉덩이를 카페가 떠나가라 '찰싹'하고 때렸다 (다른 여직원 분과는 노래방에서 브루스까지 췄으니 이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회사 직원들을 비롯해 우리 팀, 카페 사장님까지 10여 명이 넘게 보고 계셨다. 당황해서 나는 그때도 여전히 바보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성희롱이 나에게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건 그런 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듬해 봄, 결혼을 하고 집이 멀어졌다는 핑계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전동료분에게 전해 들었는데, 성희롱 전무를 비롯해 다른 부서 부장도 직장 내 성희롱 문제로 회사에서 해고가 되었다고 한다. 요즘시대에 성희롱이라니..!!! 낡아빠진 옛날회사라고 생각은 했지만 실상은 더 심각했다. 설마 요즘에도 그런 회사들이 존재하진 않겠지? 없길 바란다.




"나는 왜 그럴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린 시절부터 완벽하게 타인중심의 삶을 살고 있었던 나에게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던 것 같다. 그리고 차라리 30대 초반 극심한 우울증으로 번아웃이 왔던 게 그나마 잘된 일이 아닌가 싶다. 나의 최초 삶에 기억은 2살 반 무렵부터였는데, 한 번도 지금의 나는 어떤지를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랑을 온전히 받은 적이 없어 사랑을 나눌 줄도 몰랐다.


만성 우울증이 심해지면

그저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온통 진흙통을 뒤집어쓴 것처럼 행동이 느려진다. 회사에서 일을 집중할 수 없어서 그 기간에는 선배에게 한차례 혼난 적도 있던 터였다. 일을 하려고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도무지 뭘 해야 할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음 해에 승진도 당연히 기대를 할 수 없었다. 여러모로 나는 스스로를 루저로 여기고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오로지 칭찬과 관심에 메말라 상대 기분 맞추기에만 급급해 철저히 타인의 기분을 위한 삶을 살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 단 한 사람에게도 미움을 받는다는 건 인생 최대의 괴로움이었을 정도다.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불안했다.


나에게 보였던

우울증의 증상들

-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게으름을 넘어 괴롭다.

- 무기력하다. 성장 의지가 없다.

- 내 삶 전체가 억울하다.

- 하루에도 여러 차례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 자신감이 없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겨진다.

- 작은 자극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을 하고 창살을 스스로 가슴에 대차게 내리꽂는다.

- 특히 어린 시절 나에게 늘 매몰찼던 엄마가 사무치도록 원망스럽다.



토닥토닥

눈부시게 세상은 발전하고 온라인 시대까지 관계망이 넓어졌다고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고독과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넓어진 것 같다. 혹여나 나처럼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힘낼 생각일랑 접으시고 그저 그 시간에 나를 한 번 더 돌아보고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스스로를 사랑해 주고 배려해 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질 높은 충분한 휴식도(폰 보지 말고 마음이 안정되는 어떤 시간도) 필수!! ^^


그리고 전문의의 도움을 꼭 받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우울함을 겪는데 그 깊이가 심해지면 어떤 누가와도 홀로 일어서지 못한다. 속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서 약처방을 받고 나섰다 (정신건강 약은 약국에서 약을 타지 않는다. 불편할 환자들을 배려해 병원에서 약을 직접 주신다)


그리고 약을 먹고 나서의 몸의 변화는 이랬다.




이전 02화 지하철에서 기억상실이 온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