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일은 늘 푸짐하게 세트로
그래, 이건 악재다.
이건 분명 악재다.
2023년 어느 날 이사 일주일 전, 당시 집주인에게 걸려 온 한통의 전화는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려온다. 참고로 우린 6년 차 부부에 이사는 처음이었다 (남편이 살고 있는 작은 집에 결혼을 하면서 내가 들어와 함께 살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화가 난다. 소유한 집이 2 채나 되는 집주인인자라 ‘빠르게 오르는 금리로 어려워졌나 보다'하는 그런 한가진 생각은 당시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이사 갈 집에 계약금까지 걸어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어 집주인은 여유 있는 차분한 말투로 '같이 해결책을 찾아보아요~'라고 말하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이에 나는 조금은 창피하지만 전화통을 붙잡고 울고 불며 그 돈 꼭 주셔야 한다고 애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찍 나가는 만큼 한 달간의 이자를 줄 테니 제발 좀 우리 돈을 돌려달라 사정했다 (빌려주겠다고 했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그렇게 일주일 후 전세자금은 이삿날에 맞춰 무사히 들어왔다.
그 뒤로 나의 목표는 “내 집 마련”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무사히 이사를 간 집은 리모델링이 깔끔하게 된 집이었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에 무슨 악재가 딸려왔는지 이사 온 지 2-3개월도 되지 않아 화장실에서는 물이 새고 방에는 곰팡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전문가분을 모셔 여쭈어보니 윗집과 윗윗집의 배관이 서로 연관된 복잡한 상태였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는 하루종일 집에 있던 나에겐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고 (친구가 들어보곤 망치로 무언가를 치는 소리 같다고 했다. 그 정도로 거슬리는 소리였다), 옷방에도 곰팡이가 번지고 있어 우리 물건에도 피해가 갈까 염려가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윗집 할아버지께서 화장실수리를 쿨하게 해 주셨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윗윗집이었다.
알고 보니 윗윗집의 배관문제로 윗집과 우리 집까지 물이 새고 있던 거였다 (결국 2집에서 물이 샌 케이스) 윗집 화장실 공사를 했지만, 윗윗집의 새는 배관을 손보지 않으면 계속 방에 곰팡이가 번질 거라는 거다. 하지만 윗윗집 양반씨는 흔히 아는 일반사람남자가 아니었다. 물 새는걸 굳이 왜 자신이 확인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벅벅 우기는데 윗집의 할아버지도 그만 학을 떼고 말았다. 윗윗집은 출장을 갔다며 연락을 피했고, 주말에는 아무도 없는 척을 했다.
결국 윗집 할아버지의 노력으로 어렵게 어렵게 설득의 설득을 거쳐 배관수리를 윗윗집이 해주었다. 하지만 우리 집 도배 보상은 아랫집 할아버지가 해주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져버렸다.
그리고 사이사이 집주인에게 돌아가는 사정을 일일이 말을 해주었는데, 집주인은 그저 그렇게 잘 넘어가서 다행이라는 말만을 남긴 채 쿨하게 전화를 끊었다.
이때 나는,
문뜩 집을 계약했을 때 집주인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생각해 보니 이 집에 적잖이 문제가 많아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윗집 할아버지께 여쭈어보니 물이 샌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단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화장실 위쪽에는 물을 퍼 나른 흔적이 가득한 페트병이 퍼 나르기 좋은 모양으로 잘려있었다. 이전에 살았던 가족은 아쉬운 대로 물이 새도 그냥 살았던 모양이다.
복잡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뭐 그렇게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오나 싶었다. 역시 시세보다 저렴한 전세나 월세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 곰팡이 사건이 가고 한두 달이 흐른 작년 말 즈음, 남편 회사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우리 집은 외벌이다. 남편은 스타트업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대표의 재정관리 문제로 현재 남아있는 자본금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은 기다려보라는 말에 조금씩 불안해졌다.
그랬다. 사람스트레스가 가니 이번엔 생계 스트레스가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노동청의 도움으로 일부 밀린 월급을 받긴 했지만, 나머지 금액은 민사로 따로 소송을 하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일련의 일들을 통화로 지인에게 털어놓자 왜 자꾸만 안 좋은 일이 생기냐며 걱정 어린 시선의 말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꼬여버렸는지 나는 그 말이 온전한 위로로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그 말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졌다. 우리 집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싶었던 거다.
내가 겪었던 일들이 연달아 오는 건 이례적일 수 있지만, 아예 없는 일들은 아니다. 누군가는 겪는 일이고 넘겼을 일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자립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애써 나는 나의 악재를 에둘러본다. 그리고 이런 인생공부들이 유리멘탈인 나를 조금이나마 단단히 만들어 줄 수 있는 어떤 토대가 되어주길 간곡히 기대해 본다 (아니, 거의 싹싹 비는 수준이지만)
사실 나는 우울증을 오랜 시간 앓아오고 있는 우울증 환자다. 예민하고 화도 잘 내며 작은 것 하나까지 완벽해야만 다음으로 넘어가는 무지 답답한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 하루종일 일이 해결될 때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불안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나아져(그동안 약도 꾸준히 먹고 상담도 다닌)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브런치 글도 쓸 수 있었던 거다.
살아있다는 건 그 자체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안고 간다는 걸 깔고 갈 수밖에 없음을 조금씩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참...
이렇게 마음먹기까지 오래도 걸렸다. 그렇다고 현재에 무던해진 것도 아니다. 감정은 여전히 왔다 갔다의 연속이다. 다만 전보다는 덜 흔들림에 감사하고 있다 (불안의 폭이 조금은 작아졌다) 앞으로는 그동안 오갈 때 없던 나의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와 현재의 감정들을 솔찬히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