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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냥이 Jul 06. 2024

내가, 우리가 강의하는 이유

잘하고 있어 양양!!

내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삶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게 만든 3번의 죽음이 있다.


친구처럼 지내던 시누이, 그래도 유일하게 말이 통하던 사랑하는 아버님, 그리고 영원히 곁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엄마의 죽음이다. 세 번의 죽음을 겪을 때마다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졌다. 


스물다섯에 결혼을 하고, 스물여섯에 첫째 아이를 낳았다. 아기를 키우는 것이 잠과의 싸움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일 년을 보냈다. 일 년 즘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는 시간도 일정해지고 밤에 자는 시간이 길어졌다. 살만했다.


돌잔치를 준비하며 면접을 보러 다녔다. 첫째 14개월이 될 무렵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사회에 내 자리가 있고, 일이 있다는 게 좋았다. 아기가 예뻐도, 매일 쫓기지 않는 여유가 편안해도, 일하지 않는 나는 행복하지 않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사는 게 재미있어지던 어느 날, 아가씨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들 부부의 안 좋은 궁합 탓을 했고, 손주 보느라 딸에게 관심을 두지 못했다고 했다. 모든 게 내 탓이라는 말로 매일 밤 가슴에 칼을 꽂아도 그냥 듣고 있었다. 자식을 가져 본 나였기 때문에 어머니의 아픔이 얼마나 클지 예상되었다. 사람이 너무 아프면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누이에게 정말 미안했다. 남편의 동생이라 내가 덜 살폈던 게 미안했고, 그날 그 순간에 한 집에 있었다는 게 미안했고, 한 번 올라가 보지 않은 오전이 후회스러웠다. 가족을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으로 나는 조금 억울해도, 부당해도 그냥 참기로 했던 모양이다. 


표현하지 못하는 화는 엉뚱한 곳으로 표현되었다. 언제고 화 낼 준비를 하고 살았던 20년 전의 나는 말 그대로 진상이었다. 남편이 조금만 거슬려도 난리가 나게 싸웠다. 정말 억울했던 건 따로 있으니 다른 트집으로 싸워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매일 울었다. 다른 사람들의 불편을 보지 못하는 진상이었다. 옆 집 사람은 안중에 없이 밤새 소리를 지르고 우는 나는 어느새 어머니를 닮아있었다. 





결혼 후 머리가 나빠졌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실제로 그렇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실제로 뇌는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쩌면 뇌는 스스로를 보호하는지도 모르겠다. 멍하게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좋았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삶은 쉽고 지루했다. 나는 재밌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인데..


내가 무엇에 답답해하는지 관심이 없으니 알아챌 수도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15년을 그냥 살았다. 


가끔 사는 명품 가방이 사랑이었고, 조금 오른 월급이 자랑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궁금하지 않았다. 눈뜨면 학교 보내고, 청소하고, 빨래 널고 출근했다. 마치면 시댁으로 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왔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책을 읽어 주고 아이들이 잠들면 미드 한 편 보고 잤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돈이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사라질 수 있는지 관심이 없었다. 오늘만 사는 삶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버님은 다정한 경상도 남자였다. 츤데레라고 해야 하나. 아이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나와 아이들, 그리고 아버님이 계셨다. 주말에 손녀들과 데이트하는 재미고 사신다고 하셨다. 아이들과 키즈카페에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시면 나는 기사가 되었다. 아이들과 할아버지를 내려드리고 서점에 가서 놀거나 친구를 만났다. 


진짜 아빠 같았던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감당 안 되는 시어머니와 어떻게 살아갈지 앞이 캄캄했다. 아버님 돌아가신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걱정이 앞섰다. 언젠가 내가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지난 얘기를 한 번 즘 해야지 생각했었다. 아이들을 이만큼 키워냈으니 어머님도 나를 어른으로 인정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하며 때를 기다렸는데,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불쌍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남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전에 없던 콧소리로 "아들~~"이라고 불렀다. 징그러웠다. 매일 아침이면 전화가 왔다. 전화기가 좋은 건지, 어머니 목소리가 큰 건지 대화 내용은 늘 선명하게 들렸다. 전화기 너머로 아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싫었다. 징그러웠다. 대체 왜 갑자기 아들에게 콧소리냐고.


아버님 사업을 물려받고 씀씀이가 커진 남편은, 갑자기 돈으로 효도를 하기 시작했다. 매달 드리는 생활비에, 상가 임대료, 어머니 차량 할부까지. 매달 500이 어머니에게 들어갔다. 본인 용돈도 300이 넘었다. 매월 천만 원을 넘게 번다던 그 사람은 걱정 말라고 했다. 매달 200씩 저축을 하고 있다고 만기가 되면 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말로 다 하는 사람. 


갑자기 큰돈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회사 운영을 함께 해 달라던 남편은 이혼하는 그날까지 통장을 보여준 적이 없다. 매달 얼마를 벌었다는 자랑만 했을 뿐, 얼마를 쓰고 있는지는 철저히 숨겼다. 통장 공개로 싸우고, 불신이 쌓여갔다. 매일 반복되는 다툼에 지쳐 한쪽눈을 감았다. 그래 많이 번다잖아. 같이 즐기면 되지.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지만, 매년 새로운 대출이 생겼다. 금액도 컸다. 1억, 1억.. 사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저렇게 큰돈이 왜 필요한지. 정말 수입이 많아서 취미에 큰돈을 쓰는 건지 알려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불안했다.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불안하게 하는 요소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 상황에서 나가버리는 것이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대화 자체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결론지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마지막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잘 지내보려 했지만 실패였다. 나는 내 방식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남편의 모습을 닮아가려 하니 힘이 들었다. 부부가 서로 닮아간다지만, 결국 생긴 대로 살지 못하면 탈이 나는 거지. 매일 불안하게 살아야 하는 내 결혼에서 나는 퇴장하기로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일 년이 지나기 전에 이혼했다. 시누이가 그렇게 떠났을 때에도,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 죽음을 나와 연결시키진 못했다.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말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슬픔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나에게 "나도 아빠 없어!"라던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끝내 찾지 못했다. 뜨겁기만 한 사랑 말고 힘이 되는 사랑을 하고 싶다. 내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길.. 혹시 혼자 살아가게 된다 해도 괜찮다. 원래 사람은 혼자다 ^^


처음 20년을 가족 안에서 사랑받고 살았다. 그다음 20년은 사랑받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반 남은 시간은 내가 나를 사랑해 주며 살고 싶었다. 애쓰지 않고 흐르듯 사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감당할 가치가 있다 생각했다. 


세 번의 죽음을 지나며, 나를 숨기는 삶, 나를 고민하는 삶, 나로 살아가는 삶으로 변했다. 


어딘가 나처럼 고민하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겠지. 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다. 내가 살아온 모습이 나이고,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습으로 살던 내가 재밌으면 되는 거 아닌가. 


억지로 참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든 시간에 '억지로'라는 말이 붙지 않는다. '기꺼이' '즐겁게'라고 하겠지. 어떤 일이든 좋은 순간과 힘든 순간이 있다. 그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느냐의 전제는 내가 선택했느냐에 있을 것이다. 엉뚱하지만 재밌게 살아가는 내가 좋다. 재밌다. 


자신의 이야기가 콘텐츠가 되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전달하도록 돕고 싶다. 평생 교육을 하며 알게 된 작은 노하우들이지만, 내가 아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살아있으니 사는 삶보다,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 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강사다.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나누는 것이 나의 일이다. 꿈을 그리기 전에 나를 먼저 이해하는 것,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방법을 강의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알아두면 좋은 것들을 전하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요소들과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도 나의 강의 주제다. 그리고, 요즘은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먹는 것에 신중해야 하고, 기와 혈액이 잘 순환할 수 있도록 바른 자세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하고 있다. 


나를 가장 응원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이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 가는 매일이 즐겁다. 행복이 뭐 별 건가. 걱정이 없을 순 없지만 잘 넘겨낼 수 있고, 재미를 찾아가는 하루를 살아간다면 잘 살고 있는 거지. "잘하고 있어, 양양!"



나처럼 강사로 살고 싶은 누군가에게 나의 책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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